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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대 입학식 축사, 신영복

2006학년도 서울대 입학식 축사 - 신영복 여러분들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4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작을 이처럼 가까운 자리에서 축하하게 된 나 자신도 마치 47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 대단히 행복합니다. 나에게는 여러분이 지금 시작하는 4년의 대학 외에 또 하나의 대학이 있습니다. 20년의 수형생활이 그것입니다. 나는 그 20년 역시 "나의 대학시절“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개의 대학시절 동안 깨달은 것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대학시절에는 그릇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대학시절에는 그릇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대학시절 이후에는 그릇을 키우지 못합..

lounge 2006.03.04

이사 대비 대청소를 하다 발견한 다사인 신문

1997년 12월에 시작했으니 9년이 훨 넘었다. 피시통신이란 걸 시작하면서 가입한 하이텔 소모임인" 다사인"- "다큐멘타리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첫 온라인 신문을 낸 것이. 평수가 작은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면서 큰 맘 먹고 잡다한 짐들을 줄이는 중이었는데, 다사인신문이란 제목을 단 이 누런 종이뭄치를 두 번이나 폐지박스에 넣었다 다시 꺼내왔다. 당시로서는 야심찬 온라인신문이었는데도 아무리 찾아도 파일이 두 개 밖에 없다. 그나마 2호, 3호는 프린트 된 것도 없어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다. 폐기처분되려다 다시 꺼내온 신문들을 읽어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어대다, 오호~ 어쭈~ 감탄도 한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나름대로 즐거웠던 시절이다. 제법 짧지 않은 분량의 신문에는 창간사 라든가, 다큐멘타리 사진의 ..

lounge 2006.03.04

일산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일산 호수공원이 드문드문 보이는 전망을 가진 하늘과 가까운 오피스텔 공간으로. 하늘에 떠있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인가,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한참 고민하다가,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언니와 부동산 아가씨의 권유로 석양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석양은... 나이를 좀 더 먹어 한층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을 때를 기다려서.. 3월입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올겨울도 안녕을 고하는 듯 합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희망찬 봄기운이 당도할 수 있기를.

lounge 2006.03.01

재기를 위하여!

슬럼프랍시고 한 두어달 찌그러져 지내다 맘껏 게을려진 심신에 재기를 위한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이사를 고려중입니다. 어제는 서울에서 한참 먼 황량한 곳에 있는 (그 덕분에) 심히 넓고 우아한 아파트를 보고 한 이년 짱박혀 있어보려는 궁리에 들떠 있다가, 잠시 스스로를 유배시켜보려는 이 야심찬 계획에 가까운 이들이 심한 우려를 표하는 바람에 마음을 거두었고, 오늘은 호수가 보이는 곳을 다녀왔더랬습니다. 조만간 날 보시려거든 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오세요, 라고 말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하거나 조만간 나의 일상을 새롭게 세팅해 보려합니다. 그 생각으로 한동안 잔뜩 느슨하게 풀어져있던 뇌의 주름들이 조금씩 꼬물락 꼬물락하면서 간격을 좁히고 있는 듯 합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음을 많이 주어야겠습..

lounge 2006.02.27

새, 김종철

새 김종철 아무도 산 채로 세상을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하늘로 높이 날면서 세상을 듭니다 새들에게는 지옥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십자가는 왜 당신이어야 합니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십자가가 하나씩 있다. 새들에게 지옥이 없는 까닭은 자기만의 십자가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거우면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지금 당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가 가장 가벼운 십자가다.- 황지우 때로 시인이나 소설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위안을 얻거나 치유도 받곤 하면서 (때론 복수도 ^^), 그것을 또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이들이 그들이니까요. 대체로 삶의 고통을 가장 가치있게 보상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 아닐까, 란 ..

lounge 2006.02.25

별을 보다

친구를 꼬드겨 별을 보러 갔었습니다. 때로 심장을 조여오는 아픔을 남기고 달아다버리는 자잘한 삶의 시간들을 떠나 수천 만년 영원의 시간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달이 휘엉청 밝은 날. 이름만 익숙한 별자리들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망원경을 통해 손톱만한 토성의 띠와, 보름달의 형상을 한 달, 그 속의 토끼의 모습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빈약한 렌즈로는 총총한 별들을 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간신히 달을 찍고 들어와 가지고간 노트북으로 영화 "콘택트"를 보았습니다. 저 수천광년 빛나는 존재들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유한한 시간을 살며 상실의 고통을 감내해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한마디 위로 같은 이 영화를, 해마를 떠나보낸 hotpaper님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해마의 안식을 기원하..

lounge 2006.02.23

고맙다, 해마야.

부모님을 여의고 나서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게 처음입니다. 강아지 해마가 '갔기' 때문입니다. 20일 가까이 하던 생리현상이 멈췄나 싶어 목욕시키기 전에 산책이나 다녀오자고 한 것이 잘못이었지요. 녀석은 통조림에 비벼준 제 밥을 맛나게 해치우고는 줄이 팽팽해지도록 제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나를 끌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 갇혀 있었으니 코에 바람을 넣는 게 신났겠지요. 녀석은 마지막 추억으로 떡볶이 집 앞에 똥도 떡 하니 여섯 방울이나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 멍청한 주인이 아주 짧은 시간 한눈 파는 사이에. 식구로 지내던 강아지가 숨을 멈췄는데 처음에는 그게 현실감이 없습니다. 녀석을 안고 한동안 멍하게 서서 차가 달리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움직..

lounge 200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