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welbox 11

문득...

"발에 발붙여 너무나 중요한 하루를 살되 하늘을 바라는 여유가 있으시기를...." 스물 세살쯤이었을까, 내가 교회를 떠나던 때, 성가대 지휘를 하던 풋풋한 열아홉의 청년이 내손에 쥐어준 엽서에는 이런 말들이 써있었다.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 존경이나 원망부터 해버리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나의 게으름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지내던, 단정하게 깎은 뒷머리가 파르스름했던 그 청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엽서에 덧붙였던 말대로, "불멸의 삶을 갈망치 말고 가능의 영역을 탕진"(판다로스)하면서 부지런히, 후회없이 살고 있을까?

jewelbox 2002.11.04

석윤이

이제 한 돌하고 3달쯤이 된 나의 두번째 조카 석윤이는 요즘 한창 걷고 뛰기 시작하여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석윤이의 고 자그만 입에서 젤 먼저 들은 단어는 꽃, 이었는데 울 언니는 얘가 자라서 시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곤 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석윤이를 봐야하는 이모의 의무에 의해 그 아이를 뒤쫒아다니다 보면, 아직 5개 안팎의 단어를 구사하는 석윤이가 뭔가를 고 자그만 손가락으로 확실하게 가리키고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그 분명한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거기에는 꽃이 있고 물고기가 있고 햇빛이 있고, 그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조카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있다.

jewelbox 200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