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10

포토 에세이, 2003. 7. 디카디카

(TV에서 "옥탑방 고양이" 이라는 드라마를 본다. 싱그럽게 잘 생긴 남자와 별볼일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너무 예쁜 여자, 두 건강한 젊음이 빚어내는 시끌벅적 아기자기한 옥탑방의 소란스러움을 보고 있노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예전 어느 피디가 말했던 "가벼운 것으로는 날개를 만들 수 있다" 는 항변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살았던 옥탑방이 떠오른다. 빨랫줄이 시원시원 뻗어있고 커다란 화분들이 많았던 넓쩍한 마당에선 북한산이 한 눈에 보여서, 자주 와아, 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오곤 했다 .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이거나, 고즈넉한 시간 커다란 창문으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전해지면 방문을 박차고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의 하늘은 예외없이 아주 특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늘과 조금 가까워서일까..

writings 2003.07.05

[한 뼘 모자란 하늘의 질서] - 화순 운주사를 찾아서

인디언 달력에 의하면, 11월은 이다. 그 아름다운 말들 속에서,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지 아니하고 대지의 품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렸던 그네들의 삶을 본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에는, 확실히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가 들어있다. 서로 좋은 풍경이 되어주기로 약속한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갔던 길에, 오래 전부터 벼르던 운주사를 찾았다. 그리 서두름 없이 달리던 군내 버스가 예정시간을 넘어 화순의 운주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야트막한 산능선 위에 걸려 있었다. '코스모스 하늘하늘 피어 있는 길'을 걸어, 황혼빛으로 어두워가는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탑들을 망연히 바라보다, 일정을 변경해 민박집을 찾았다. 운주사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0여 ..

writings 2002.11.27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녀와서...] 2000. 4. 11

우연찮게 샤머니즘에 관한 다큐멘타리 제작팀에 끼여 헝가리를 다녀왔습니다. 절대적으로 체험되던 시간과 공간, 나의 '존재형식'으로 엄연하기만 하던 그 좌표를 처음으로 아주 멀리 벗어나 보니, 빡빡한 일정과 낯선 도시에서의 설레임 속에서도 내 자신의 삶의 자리가 자꾸 돌아봐졌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비행기에서부터 와아, 함성을 자아낸 확 트인 평화로운 평원을 달려 도착한 고즈넉한 도시. '아름답고 푸른'은 아니지만, 부다와 페스트를 나누며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혹은 다뉴브는 영국식과 독일식 말이고, 그곳 말로는 두나라고 한답니다.) 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들. 강언덕에 자리한 고성들과 거리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이, 오랜 시간을 견뎌 쌓아온 깊은 빛을 발하는 곳. 과거와..

writings 2002.10.22

[침묵의 뿌리 (조세희 제3작집)를 읽고]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카메라라곤 자동카메라 한 번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관심도 없던 대학 1학년 때였다. 몸도 마음도 가난했고 끝모를 갈증에 목말라했던 그 봄에, 문득 혼자 있고 싶어 어두컴컴한 도서관 서고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책... 흰 색 표지에 작은 프레임으로 담긴 흑백사진 속에는 서늘한 눈매를 가진 소녀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애잔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마치 슬픈 선언처럼. 그리고 조세희라는 이름... 고등학교 시절에 멋모르고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강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책머리에 적힌 작가의 말.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 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 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writings 2002.10.22

[춤추는 별] 2001. 03. 04

오늘, 로테르담의 아트-테크놀로지 센터, ‘언스테이블 미디어 연구소’를 표방 하는 V2의 웹사이트를 구경하다, 1987년에 이들이 발표했다는 선언서를 읽다.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는 전파나 주파수를 기반으로 한다. 음향, 빛, 비디오, 컴퓨터 따위가 그것인데, 이들은 불안정성(instability)을 그 속성으로 한다… 양자역학은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서 전자의 존재를 밝혀낸 바 있다. 그런데, 전자는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인 운동을 특징으로 한다. 전자가 가진 이러한 불안정한 운동이 비정태적 미디어의 기반이다…. 우리는 불안정적인 혼동상태를 사랑한다. 그것은 진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오스를… 셀 수 없이 많은 상이한 질서들로 구성한 커다란 질서라고 생각한다. 이 속에서 안정..

writings 2002.10.22

[Shall we dance?] 2001. 03. 13

몇 년 전 가끔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삶에서의 일탈이니 탈주니 하는 말들을 구호처럼 되풀이하면서, 꿈꾸지 않는 소시민 직장인들의 나태함을 혐오하던 그가 야박하게 느껴져 괜히 성실한 직장인을 극구 변호하던 나는 분명 그를 질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뭐 누군 그러고 싶지 않아서 갑갑하게 사나, 하면서…. 이름만 듣던 홍대 앞 락까페들-뭐 발전소니 언더그라운드니 하는-로 집요하게 이끌려 하던 것에 완강히 거부하던 내가 꽤나 한심하게 보였는지, “넌 그래서 안돼. 자신을 얽어매는 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라구.” 하며 꽤 강도 높은 비난을 하던 그에게 사실 변명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단지, 안해본 거라 낯설어서 그렇지 뭐, 라는 말밖에. 영화를 봤다. 그리고 비디오를 봤다. 뒤늦게..

writings 2002.10.22

다시 가본 동물원

서울 대공원 전철역에서 내려 서울대공원에 가기로 했다. 수도의 이름이 고유명사로 붙고 큰 대(大)자까지 붙어있는 대공원은 참 넓어서 선택이 필요했다. 그래서 드림랜드에서 하늘을 나는 꿈을 접고, 미술관을 지나쳐 동문으로 들어가 "미술관옆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함께 간 후배녀석을 위해 리프트를 타자 온공원이 아래로 펼쳐졌다. 리프트는 무지하게 긴 것만 같았는데, 물어보니 1Km라 했다. 아래 정문으로부터의 구간을 합하면 총 2Km다. 2Km를 그렇게 지나 사뿐히 땅에 착륙을 하여, 거기서부터 바로 동물원 순례를 시작했다. "동물원에 가보았지-"로 시작하는 동물원의 노래 를 처음 들었을 땐, 생각했었다. '치, 동물원에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노래를 계속 들어보니 그게 자랑..

writings 2002.10.17

[부산 칠암리, 통도사...] 1999.10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곽재구 시인은 말했었다. 여기에서의 삶이 각박할수록 그곳에 대한 향수는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역마에의 꿈도 더욱 커지기 마련이라고. 예기치 않은 쓸쓸함을 통과해왔던 이 가을에, 나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기러웠다. 칠암리의 밤바다는 칠흙같이 어두웠다. 먼 밤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 내리자,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 비릿한 바다내음은 정제되고 가공되지 아니한 태고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숨을 쉬어 그 내음을 들이키고 한 발을 내딛자 시커먼 바다가 눈앞에 선뜻 다가왔다. 그 위로 희미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물결의 흐름... 동행한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

writings 2002.10.16

[디아의 지하철 일기] 1999. 9

그리움으로 만나는 인사동거리 혭궤열차라는 것이 있었다. 참 해봐야되는 것도 많은 나이에, 당시 수인선이라고 불리던(수원에서 인천까지 운행) 협궤열차를 탔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뭐가 들어있는지-필시 참기름이나 김, 곡류 뭐 그런 거였을 것이다-꽁꽁 묶여진 보따리들이 여기저기 어엿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힘든 노동을 끝내고 고단한 얼굴로 돌아가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학생들이 있었다... 어두운 형광등 불빛이 더 정겹게 느껴져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훈훈한 겨울 같았다. 눈이 오는 날 오면 정말 좋겠다고 친구가 속삭였다. 몇 년 후, 시장의 논리에 밀려서 효용가치를 상실한 협궤열차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아 한숨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카메라..

writings 2002.10.14

[파주 영주로 가는 그 길] 1997. 04. 28

대학에 다니던 20대 초반에 단짝 친구가 음악을 몇 곡 복사한 카세트테이프를 선물로 주었었다. '선언과 비단길'이라는 이질혼성의 제목과 함께, "우리 가는 길이 비단길이 아니어도 사랑하자."라는 글을 적어서.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우리를 아프게 통과하거나 그냥 흘러가 버리거나 하면서 우리는 참 짧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내 밀려서라도 가야한다면 이름만이라도 아름다워야지 비단길 허나 지나는 마음 쓸쓸하여 영 자갈밭일 때 저기 길을 끌어가는 덤불숲 사이로 언뜻 몸 감추는 세월의 뒷모습 보인다" (강연호 "비단길1") 파주로 향하는 길은 내겐 낯선 길이 아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도 비슷한 시각에 이 길을 지났었다. 지난겨울 세상을 떠나신 분을 찾아 뵙는 길이었다..

writings 200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