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nge 516

끝을 생각하다

땅끝 마을에 가 본 적이 있다. 땅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을까. 그 때 기억은 희한하게도 꿈결처럼 아스라하다. 지독하게 더운 날씨였다. 강렬한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야트막한 해안의 음식점들은 영화 가위손에 나오는 집들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키보드에 푹 빠져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디오나 자동차나 그런 것들이 아니고 키보드인 것은, 넉넉치 못한 살림에서 끝까지 가볼 수 있는 것이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를 잘 모르고 키보드의 매력도 전혀 모르지만, 그것이 세속적으로 그를 윤택하게 해주거나 인정받지도 못하는 종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을 갈구하는 열정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끝. 그러니까 끝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싯귀절처럼 "후욱 비린내나는 ..

lounge 2006.02.01

혜영언니 안녕!?

지난 여름밤 언니가 숨차도록 달려준 덕분에 신당역에서 수원가는 막차탄 거 생각하면, 내가 뭐믿고 그 시간까지 있었나... 가슴을 쓸어내려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피식 웃음도 나요. 근데 언니. 언니가 아래 소개한 안나할머니.. 왜 그날 우리 점심 먹을때 테이블에 놓여있던 콜라 보고 내가 한 말, 혹시 기억해요? 우리나라 어떤 젊은 부부가 네팔등반에 나섰다가 끝마치고 그곳을 떠나려는데 그동안 짐꾼을 도맡았던 한 네팔청년이 콜라 한 병을 사서 아내의 품에 안겨주었다는 이야기. 몇 달러되지 않은 수입에 비해 콜라의 가격또한 만만한 편은 아니어서 콜라를 받아든 아내가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바로 그 안나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 얘기였어요.^^ 하경언니.. 우리 올 한해 아주 행복하게 살아요. 왜냐? ..

lounge 2006.01.28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 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살다가 보면/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어떻게 일어나야하나 고심하던 내 눈에 이 말들이 와 박힌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니.. 그냥 허어, 살다보니 이런 일도.. 하며 일어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머리를 짧게 잘랐다. 집앞에 있는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가는게 귀찮아 세 번이나 내 손으로 자르며 버텼던 탓에 무척이나 오랫만..

lounge 2006.01.21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 여자 홀로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 저려오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비행기 창가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여자도 역시 아름답다. 바닷가를 혼자 거닐며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의 모습도 그림처럼 멋지다. 이런 연출을 기대하면서 여자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모든 여자의 영원한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둘이 하는 여행과는 달리 혼자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충동이 더 크다. 여자는 고독한 모습으로 존재할 때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자의 깊은 가슴 속에는 항상 메워지지 않는 빈 자리가 있다. 부모도 형제도 사랑하는 사람도 메워줄 수 없는 자리…… 가을이나 겨울 같은 어떤 특정한 계절이..

lounge 2006.01.20

면죄부.

"만약에 내가 죽어 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그가 나에게 너는 너의 죄 때문에 지옥에서 살아야 하느니라, 한다면 나는 이미 이 별에서 지옥의 반을 경험했노라고 말하겠다. 비록 그것이 그 때까지의 내 삶이 마련한 빈약하기 그지없는 면죄부라 할지라도, 나는 최소한 신의 절대적인 양심을 믿는 것이다." - 이응준 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中 오래 전 읽었던 소설 한 자락, 강렬하게 남았던 이 귀절이 내게 얼마간의 안도나 위로를 주었던가...

lounge 2006.01.18

한 밤중의 울음 소리

오늘 꺼이 꺼이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를 세 번이나 들었다. 두 번은 지인과의 전화를 통해. 한 번은 방금 전 내 집 현관문 앞에서. 용감하게 문을 따고 나가봤더니 옆집 아줌마가 문앞 계단에 앉아 울고 있었다. 과음을 하신 듯 했다. 도와 드려요? 물었더니 아주 희미하고 미안한 목소리로 괜찮다 하였고, 날씨가 춥다고, 얼릉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고 들어와선 마음이 놓이질 않아 번호키 열쇠가 눌러지고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문앞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후 늦게 출근해서 새벽에야 돌아오는 자그마한 체구의 얼굴이 고운 이 아줌마가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아저씨와의 잦은 다툼과 울음 소리를 비추어보건데 그녀의 삶이 늘 녹녹해보이지는 않았다. 왜 어떤 사람들의 삶은, 이렇듯 아프고 슬퍼야..

lounge 2006.01.16

혈액형을 바꿀 수 있다니..

혈액형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길 어제 들었다. 예를 들어 골수이식을 해야하는 경우, 다른 조건은 다 맞는데 혈액형만 다른 골수를 발견하게 되면 그대로 시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단 골수가 바뀌면 우리의 몸은 차차 이에 적응해가서 서서히 혈액형이 변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건 혈액형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 혈액형을 맞춰버리던 상황이었는데, 내가 피를 바꾸고 싶다고 했더니 총기있는 의대생이 이 정보를 알려줬다. 그러니 거짓은 아니겠다. 온 몸에 흐르는 피를 갈아엎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자기부정의 욕구가 강해질 때가 있다. 누구라도 일생에 한 번쯤이라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로 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고 우리 몸은 또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lounge 2006.01.14

왠 트래픽 초과!

또 트래픽 초과로 잠시 문이 닫혔더랬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싸이나 블로그에 비하면) 적당히 "숨어있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이 호젓하기 그지 없는 곳에 뭔 트래픽 초과란 말인가 의아해하며 전송량 통계치들을 들여다보니, 원인은 아무래도 간간히 올리는 음악에 있었던 듯 하네요. 그래서 많이 노출된 음악파일 하나는 살짝 지웠습니다. 뭐 그냥 별 일 아니랍니다, 라는 보고입니다. 벌써 새해가 작심 삼일 세 번 쯤 했을 만큼 지나갔군요. 당신의 새해 소망은 무엇이었는지, 새해엔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댓글기피증"을 가지고 있다던 조용한 당신 말입니다. 흐흐

lounge 2006.01.11

눈이 펑펑

눈이 펑펑 오더군요. 눈오기를 뜬눈으로 기다리던 강원도 가뭄지역에도 좀 내렸을려나.. 잠시 우울하던 기분이 날리는 흰 눈을 보자 훨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오늘 같이 배드민턴을 쳤던 스무살 아이-고은 초등학교 앞에 사는-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조기 축구 하는 아저씨들 너무 싫어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이렇습디다. "눈이 오면 최신 삐까뻔쩍한 기계로 눈을 싹 밀어 없애버리거든요. 축구한다고. 아이들이 눈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거 아닌가요. 그 아이들이 어떻겠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인데." 그리고는 언니, 낼 꼭 나와요, 라며 팔랑팔랑 뛰어가는 스무살의 뒷모습이 이뻐 잠시 눈길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스무살! 아아 라는 감탄사를 꼭 붙여야할 거 같다 했던 그리운 그 스무살. ♪ Tesla의 ..

lounge 200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