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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os250's before
"발에 발붙여 너무나 중요한 하루를 살되 하늘을 바라는 여유가 있으시기를...." 스물 세살쯤이었을까, 내가 교회를 떠나던 때, 성가대 지휘를 하던 풋풋한 열아홉의 청년이 내손에 쥐어준 엽서에는 이런 말들이 써있었다.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 존경이나 원망부터 해버리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나의 게으름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지내던, 단정하게 깎은 뒷머리가 파르스름했던 그 청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엽서에 덧붙였던 말대로, "불멸의 삶을 갈망치 말고 가능의 영역을 탕진"(판다로스)하면서 부지런히, 후회없이 살고 있을까?
세상 만사가, 만물이, 삶이든, 삶 아닌 것이든, 고통이며 욕망이며 사랑이며, 갖은 사무치는 것들로부터 너무 가깝지 않아서, 가볍게 지나쳐가기를, 나의 인생이, 그리고 너의 인생이. 김소연 시집 중에서
나의 사랑은 언제나 황혼을 사랑하는 일 같았다. 사랑이었던 자리 상처가 되어 통점을 자극해오면, 언제나 먼저 떠날 준비를 하고 서둘러 배웅나가 있는 내가 가여웠다.
내 기억속의 노란 빛은 온통 그리움의 빛깔이다. 종로3가 극장앞에서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울언니는 윤도현의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산에다 엄마를 묻고 돌아오던 길 먼 산을 바라보던 아빠의 눈빛이 생각났다 했다. 딱 그 풍경이라 했다.
살다보면 이렇게 세상 어느 길모퉁이에서 손수건 한 장 없이도 함께 젖는 이 없이도 혼자 오래도록 젖어버리는 날도 있는 법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제 한 돌하고 3달쯤이 된 나의 두번째 조카 석윤이는 요즘 한창 걷고 뛰기 시작하여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석윤이의 고 자그만 입에서 젤 먼저 들은 단어는 꽃, 이었는데 울 언니는 얘가 자라서 시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곤 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석윤이를 봐야하는 이모의 의무에 의해 그 아이를 뒤쫒아다니다 보면, 아직 5개 안팎의 단어를 구사하는 석윤이가 뭔가를 고 자그만 손가락으로 확실하게 가리키고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그 분명한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거기에는 꽃이 있고 물고기가 있고 햇빛이 있고, 그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조카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있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곳이라는 개심사. 오래 휴식 후에 달려갔던 개심사에서 마주친 운동화와 "Welcome"이라는 단어가 눈물나게 반가웠던 기억.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지나쳐 온 건 무엇이었을까
첫 사랑이 끝나는 항구에서 눈물 섞어 마시는 술은 피보다 달다... --이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