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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는 시러..

kalos250 2004. 8. 31. 23:51
"괜찮아, 점심 먹는게 뭐 숙제냐..."  
친구와의 점심약속을 두 번이나 연기하고나서, 친구에게서 받은 메세지입니다.
참 너그러운 좋은 친구입니다.
숙제처럼 해내야하는 일들이 없는 날들을 (하루라도!)보내고 싶다고 엄살을 부리다 오랫만에 들어와보니 8월 날짜가 적힌 게시물이 달랑 하나.
참 빈곤한 한달을 살았구나 싶습니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은 또 "해야할 들"에 파묻혀 지내야할 판인데,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올꼬..하는,  먼 기억으로 남은 찬송가 한 자락이 입안에 맴돌 따름입니다.
"부질이 없음이야, 속수한 무책이야.." 로 이어지는 맛이 간 메신저 이름을 보고,
염려가 가득한 멀리 사는 동생은 "긍정적인 걸로 좀 바꿔" 라고 자꾸 주문을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이럴 때도 있는 게지.. 역시 빈곤한 항변입니다.

낼은 벌초를 가기로 한 날입니다.
오늘 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서, "천천히 와도 괜찮아, 벌초하는 게 뭐 숙제냐" 라고 말해주시면 고맙겠지만, 좀 잘 삐지던 우리 아버지, 그럴 리는 없을 듯 합니다.  ^^
(이런 상상도 합니다. 얄미운 클라이언트가 나타나서, "괜찮아요. 대충 천천히 하세요. 이게 뭐 숙제인가요.." 라고 말하는.)

생일 축하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나이에 생일은 뭐..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습니다.
며칠 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한의사 선생님께서 "3년만 잘 버티면 하는 모든 일이 다 성공하겠다"는 덕담을 해주신 터라 나이를 또 한살 먹는 일이 그다지 쓸쓸하진 않았습니다.
하긴, 익숙해지기도 했을 만한 일입니다.

날씨는 아직 후덥지근 하지만, 하늘은 한층 높고 파래진 느낌입니다.
목요일엔 꼭 친구를 만나야겠습니다.
" 내 묘비명엔 회사원 최진이, 라고 쓰여질 거 같아.." 라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스무살 때의 그 푸르른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17번째 생일 축하를 받으면 힘이 많이 날 거 같습니다.
이렇게 내 소중한 사람들의 격려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왔음을 생일을 맞으며 다시 확인합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3년 후부터는 정말 성공이란 걸 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잘 챙길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보는 9월의 첫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