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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발견

kalos250 2004. 7. 13. 01:24
내가 아는 한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남일선수에게 주었던 가볍지 않은 열정을 , 키아누 리브스에게 바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출연한 영화 아이다호를 추천해주었더니 예상했던 대로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언제나 열정의 대상을 뜨겁게 품고 있는 이 사람은 정말 "시인으로 태어난" 사람인 거라고, 좀 미적지근하게 살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뜨거운 커피 위에 얹혀진 아이스크림" 처럼,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차가운..  

꿈결같은 세상, 이라는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분주한 생활속에 한 두어번 방송을 놓쳤다 들어가보니,
수년 전에 내가 한동안 내내 듣고 다니던 "I might be crying." 이라는 매혹적인 노래를 배경으로 낭독의 발견, 이라는 방송 프로를 본 이야기가 적혀있다.
마침 모니터링을 해주기로 하여 인터넷으로 그 방송을 보고난 참이어서 반갑게 그녀의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방송중에 시인이 낭독했던 시와 함께,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움직여 졌는지가 적혀 있다.


임하댐 수몰지구에서

최 영 미

너 없이는 어떤 풍경에도 잠길 수 없어
하늘 향해 팔 벌리고 생매장된 나무들
죽어가는 가지 끝에, 네 얼굴을 건다

무모했던 여름의 기억들도
개울져 흐르는 저마다의 진실도
이 생에 내가 피운 모든 먼지들도
저무는 햇살에 부서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데
설익은 낙엽 한떼 우수수 난파한 배처럼 떠다니는
그해 시월 강둑에 앉아
이 생에 내가 짓고 허문 마음의 감옥들이여
대답없이 오래 썩은 한숨이여
차라리 제 무게로 가라앉기라도 했으면...

그해 시월 나는 강둑에 앉아 자투리로 남은 청춘을
방생했다. 쥐었다 풀었다 두 주먹만 허허롭게
살아 놓아준 삼십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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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연애가 시작될 무렵,
J는 밤마다 스스로 무언가를 읽어주는 걸 참 즐겼던 것 같다.
시를 읽어주거나, 좋은 글을 읽어주거나.
하다못해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국사나 영어시험 문제까지 읽어주었다. 야심한 밤에 그 비싼 핸드폰 요금을 감당해가면서...
나즈막한 음성이 귓전에 휴식같이 편안했었다.
그래서 내가 뻑 갔다. ^^;;
......  (꿈결같은 세상 http://my.stoneradio.com/smilep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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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핸드폰 요금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하는 이 여인이 맞이할 서른 다섯은
이 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이들은 참고하시길)

내게도 무언가를 읽어주는 걸 즐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만나면 간밤에 감동깊게 읽은 무언가를 상기된 목소리로 읊어주던 젊은 날의 친구가 있었고,
외출한 사이에 집의 응답전화기에 목소리를 쫙 깔고 잔뜩 멋을 부린 시낭송을 남겨놓았던 선배가 있었다.
자신이 쓴 글을 들어봐달라고 하던 사람들도 두어명 있었고,
그리고...  그녀의 그처럼  비싼 핸드폰 요금을 감당해가면서, 휴식같이 편안한(그리하여 때로는 째째파리처럼 졸음을 안겨주기도 하던) 목소리를 들려주던 사람도 있었다.

어찌어찌 살다보니 삶이 분주해지고, 인연이 어긋나기도 하여  지금은 낭독의 소리들을 잘 들을 수 없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아 때로 그리운 듯 떠오르니,
이래서 "사운드이미지"라는 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보다.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그 안에 참 많은 소리가 섞여있음을 발견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오늘은 이 여름장마비의 화려한 연주에 귀를 열고 잠을 청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