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란에 소개된 Mercedes Sosa 에 대한 글을 http://imazine.hihome.com에서 퍼왔습니다.)
Mercedes Sosa - 정치적 공정성과 예술성의 탁월한 조화
가수 본인이 들으면 화낼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샘플 CD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것도 그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가운데서. 퓨전이나 보컬 재즈가 모인 CD 전체에서 유독 소사의 음악은 빛을 발했다.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는 얘기다) 투박하지만 뱃속 깊숙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깊이있는 목소리,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단촐한 악기 세팅, 아르헨티나 민요의 영향이 짙은 선율. 그 음악은 홀로 선연한 광채를 발해서, 나의 내면에 'Mercedes Sosa'라는 이름을 깊게 새겼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거인인지(실제로 '거인'이다), 그녀 음악의 정치성 짙은 메시지, 군부 독재하에 겪은 고초 등의 바이오그래피를 알게 되기 전의 이야기다. 실제 소사의 음악은 단순히 '좋다'하고 넘어가기엔 내포하는 의미가 그녀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정보 몇가지는 알아두는 편이 좋겠다. 이럴때 인터넷 뒀다 뭐하나.
완전히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Allmusic.com을 이용해 보기로 하자. (이따금씩 국내 저널리스트들이 함부로 베끼다 곤욕을 치른다) 그녀가 1935년생이며, 아르헨티나인이라는 기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더해 소사가 비올레따 파라(Violetta Parra)나 아따후알파 유팡뀌(Atahualpa Yupanqui)와 함께 누에바 깐시온 운동(Nueva Casion Movement)의 기수이며, 1980년을 전후해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Fact)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그래미에서 수상한 사실은 덤이다) 독재 정권의 탄압? 왜 정권이 가수를 탄압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에바 깐시온에 대한 지식이 필수이다. 다시 인터넷의 힘을 빌어 보자. 사회진보연대 박준도 편집인은 누에바 깐시온에 대해 "우리말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이며, 1958년 칠레에서 열린 누에바 깐시온 대회가 60-70년대 남미의 노래 운동을 일컫는 말로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누에바 깐시온의 슬로건은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 운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 제국주의에 압사당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 음악을 회복하기 위한 음악 운동이자, 미국과 극우의 지배를 타파하고자 한 사회 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누에바 깐시온은 음악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민요에 뿌리를 둔 채 국가와 지역에 따른 정체성 찾기에 주력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정성'을 담보로 한다. 1975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소사를 용납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못해 필연이었던 셈이다. (이런 현상은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벌어진 바 있다. 한국 포크-록 뮤지션들이 겪은 암흑기를 떠올려 보라)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우리가 소사의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버거운 일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사라는 거인의 정치적 공정성과 그 '위대함'을 음악의 형태로 맛보는 일은 'En Argentina'라는 음반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 작품은 1982년 소사가 긴 망명 생활을 끝내고 '목숨을 건 귀국' 뒤에 가진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이다. 비록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가 몰락하던 시기이기는 하지만, 소사가 망명 중에도 활발한 본국 정부 비판 활동을 벌였음을 감안한다면 귀국 뿐만이 아니라 공연 자체도 생명을 건 행동이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때문일까. 다른 공연 실황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청중과의 교감, 그 거대한 스케일의 감동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청중들은 암울한 국내 현실로부터 구원의 메세지를 듣기 위해 그녀를 찾았고, 그녀 역시 목숨을 걸고 국민들 앞에 서서 진정한 용기의 소리를 발한다. 그 때문에 존 바에즈가 히트시켜 더욱 유명해진 'Gracias a la vida'가 주는 벅찬 감동도, 'Cancion con Todos'에서의 온 힘을 다한 절창도 몇 배가 된다. 이것은 노랫말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를 초월한다. 공연 당시의 상황과 청중들의 환호, 소사의 격앙된 표정을 상상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언어란 것이 의미는 전달되지 않더라도 '뉘앙스'는 전달되는 특성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정치적 배경을 뒤로 하고, 소사 음악의 아름다움만을 접하고 싶더라도 방법은 있다. 국내에도 발매된 'The Best of Mercedes Sosa'는 흔한 형태의 편집 음반이긴 하지만, 소사의 매력을 압축해서 접하고자 하는 청자에게는 '입문서' 구실을 하기엔 무난해 보인다. 'Todo Cambia'나 'Luna', 'La Maza'와 같은 대표곡들이 고루 수록되어 있다. 그것도 전통 민요보다는 현대적 색채를 띄는 곡들 위주로 선곡되어서, 입문서로서 더더욱 적합하다. 뱃속 깊은 곳에서, 시쳇말이지만 온 영혼을 울리며 발하는 소사의 목소리와, 소박한 악기 구성이지만 테크닉 자체는 환상적인(전주에서 트레몰로 주법을 구사하다가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를 능수능란히 오가는 식이다) 연주, 그리고 팜파스의 광활한 풍경이 절로 눈에 그려지는 특유의 멜로디가 아무런 금기도 없이 한데 어우러진다. 게다가 이런 가운데서도 선명하고 온건한 메시지를 설파한다. ('Todo Cambia'는 '모두 바꾸고 말리라'는 의미이며, 'La Maza'는 '망치'를 뜻한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소사는 '정치적으로 공정'하고 '예술로서 탁월한' 드문 음악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경제적으로 뒤처진 후진국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한 여성은 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로서 정치 활동을 했으며, 민중을 감싸 안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놀라운 시심과 예술성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후배 록 음악인에게 헌정하는 음반까지 만들었으며, 현재까지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역시 군사 독재의 암흑기를 거쳤고, 음악인들도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뮤지션들은 (이렇게 딱 잘라 말하면 안되겠지만)정권의 탄압에 '굴하'거나, 노래로서 '관'을 홍보하거나, 민중들에게 '세속적 사랑'을 과도하게 주입했다. 그렇지 않고 탄압받으면서도 올바른 메세지를 말한 경우에는 음악적으로 별볼일이 없었거나, 민중들과 먼 거리에서 '투사'로서만 각인되었다. 게다가, 근래에는 미사리와 소극장으로 퇴진해 버렸다. 굳이 '누가 누구더러 후진국이라 하느냐'고 반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도, 좀처럼 조화시키기 어려운 정치적 공정과 예술성을 능란하게 조화시키는 이 거대한 여인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하는 소리다.
P.S - 앞에 언급한 '후배 록 뮤지션에게 헌정하는 음반'은 소사의 'Canta a Charly Garcia' 음반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음반에서 소사는 아르헨티나 록의 거성인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sia)의 노래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것 역시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드물고 부러운 일이다. 또한 서두에서 이야기한 소사의 그래미 수상작은 2000년에 발표된 'Misa Criolla'를 가리킨다. 이 음반은 국내에도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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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ando Ya Me Empiece a Quedar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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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es Sosa 관련 사이트
월간 사회진보연대의 'Misa Criolla'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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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본인이 들으면 화낼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샘플 CD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것도 그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가운데서. 퓨전이나 보컬 재즈가 모인 CD 전체에서 유독 소사의 음악은 빛을 발했다.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는 얘기다) 투박하지만 뱃속 깊숙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깊이있는 목소리,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단촐한 악기 세팅, 아르헨티나 민요의 영향이 짙은 선율. 그 음악은 홀로 선연한 광채를 발해서, 나의 내면에 'Mercedes Sosa'라는 이름을 깊게 새겼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거인인지(실제로 '거인'이다), 그녀 음악의 정치성 짙은 메시지, 군부 독재하에 겪은 고초 등의 바이오그래피를 알게 되기 전의 이야기다. 실제 소사의 음악은 단순히 '좋다'하고 넘어가기엔 내포하는 의미가 그녀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정보 몇가지는 알아두는 편이 좋겠다. 이럴때 인터넷 뒀다 뭐하나.
완전히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Allmusic.com을 이용해 보기로 하자. (이따금씩 국내 저널리스트들이 함부로 베끼다 곤욕을 치른다) 그녀가 1935년생이며, 아르헨티나인이라는 기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더해 소사가 비올레따 파라(Violetta Parra)나 아따후알파 유팡뀌(Atahualpa Yupanqui)와 함께 누에바 깐시온 운동(Nueva Casion Movement)의 기수이며, 1980년을 전후해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Fact)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그래미에서 수상한 사실은 덤이다) 독재 정권의 탄압? 왜 정권이 가수를 탄압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에바 깐시온에 대한 지식이 필수이다. 다시 인터넷의 힘을 빌어 보자. 사회진보연대 박준도 편집인은 누에바 깐시온에 대해 "우리말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이며, 1958년 칠레에서 열린 누에바 깐시온 대회가 60-70년대 남미의 노래 운동을 일컫는 말로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누에바 깐시온의 슬로건은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 운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 제국주의에 압사당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 음악을 회복하기 위한 음악 운동이자, 미국과 극우의 지배를 타파하고자 한 사회 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누에바 깐시온은 음악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민요에 뿌리를 둔 채 국가와 지역에 따른 정체성 찾기에 주력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정성'을 담보로 한다. 1975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소사를 용납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못해 필연이었던 셈이다. (이런 현상은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벌어진 바 있다. 한국 포크-록 뮤지션들이 겪은 암흑기를 떠올려 보라)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우리가 소사의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버거운 일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사라는 거인의 정치적 공정성과 그 '위대함'을 음악의 형태로 맛보는 일은 'En Argentina'라는 음반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 작품은 1982년 소사가 긴 망명 생활을 끝내고 '목숨을 건 귀국' 뒤에 가진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이다. 비록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가 몰락하던 시기이기는 하지만, 소사가 망명 중에도 활발한 본국 정부 비판 활동을 벌였음을 감안한다면 귀국 뿐만이 아니라 공연 자체도 생명을 건 행동이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때문일까. 다른 공연 실황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청중과의 교감, 그 거대한 스케일의 감동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청중들은 암울한 국내 현실로부터 구원의 메세지를 듣기 위해 그녀를 찾았고, 그녀 역시 목숨을 걸고 국민들 앞에 서서 진정한 용기의 소리를 발한다. 그 때문에 존 바에즈가 히트시켜 더욱 유명해진 'Gracias a la vida'가 주는 벅찬 감동도, 'Cancion con Todos'에서의 온 힘을 다한 절창도 몇 배가 된다. 이것은 노랫말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를 초월한다. 공연 당시의 상황과 청중들의 환호, 소사의 격앙된 표정을 상상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언어란 것이 의미는 전달되지 않더라도 '뉘앙스'는 전달되는 특성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정치적 배경을 뒤로 하고, 소사 음악의 아름다움만을 접하고 싶더라도 방법은 있다. 국내에도 발매된 'The Best of Mercedes Sosa'는 흔한 형태의 편집 음반이긴 하지만, 소사의 매력을 압축해서 접하고자 하는 청자에게는 '입문서' 구실을 하기엔 무난해 보인다. 'Todo Cambia'나 'Luna', 'La Maza'와 같은 대표곡들이 고루 수록되어 있다. 그것도 전통 민요보다는 현대적 색채를 띄는 곡들 위주로 선곡되어서, 입문서로서 더더욱 적합하다. 뱃속 깊은 곳에서, 시쳇말이지만 온 영혼을 울리며 발하는 소사의 목소리와, 소박한 악기 구성이지만 테크닉 자체는 환상적인(전주에서 트레몰로 주법을 구사하다가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를 능수능란히 오가는 식이다) 연주, 그리고 팜파스의 광활한 풍경이 절로 눈에 그려지는 특유의 멜로디가 아무런 금기도 없이 한데 어우러진다. 게다가 이런 가운데서도 선명하고 온건한 메시지를 설파한다. ('Todo Cambia'는 '모두 바꾸고 말리라'는 의미이며, 'La Maza'는 '망치'를 뜻한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소사는 '정치적으로 공정'하고 '예술로서 탁월한' 드문 음악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경제적으로 뒤처진 후진국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한 여성은 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로서 정치 활동을 했으며, 민중을 감싸 안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놀라운 시심과 예술성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후배 록 음악인에게 헌정하는 음반까지 만들었으며, 현재까지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역시 군사 독재의 암흑기를 거쳤고, 음악인들도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뮤지션들은 (이렇게 딱 잘라 말하면 안되겠지만)정권의 탄압에 '굴하'거나, 노래로서 '관'을 홍보하거나, 민중들에게 '세속적 사랑'을 과도하게 주입했다. 그렇지 않고 탄압받으면서도 올바른 메세지를 말한 경우에는 음악적으로 별볼일이 없었거나, 민중들과 먼 거리에서 '투사'로서만 각인되었다. 게다가, 근래에는 미사리와 소극장으로 퇴진해 버렸다. 굳이 '누가 누구더러 후진국이라 하느냐'고 반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도, 좀처럼 조화시키기 어려운 정치적 공정과 예술성을 능란하게 조화시키는 이 거대한 여인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하는 소리다.
P.S - 앞에 언급한 '후배 록 뮤지션에게 헌정하는 음반'은 소사의 'Canta a Charly Garcia' 음반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음반에서 소사는 아르헨티나 록의 거성인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sia)의 노래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것 역시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드물고 부러운 일이다. 또한 서두에서 이야기한 소사의 그래미 수상작은 2000년에 발표된 'Misa Criolla'를 가리킨다. 이 음반은 국내에도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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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carera de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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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 le Pido a 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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