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준다" 라는 건, 강자가 약자에게 베풀 수 있는,
그러니까 약자가 강자의 넓은 아량을 구하여 강자에게 청할 수 있는
그런 행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 말이 정반대로 쓰이고 있는 걸 종종 본다.
재밌는 것은 강자가 사회경제적 약자임에 분명한 사람에게 이 봐달라 식으로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려 할 때, 종종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딱한 처지란, 알고 보면 참 말도 안되거나, 말이 되더라도 그 상대방 약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건 안되는게 보통이다.
물론 그 손해라는 게 때로는, 액면가로만 치면 약자가 평생토록 손해 혹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액수를 훨 넘기도 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데에서 손해를 봐서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이 일에 대해선 당신이 좀 손해를 봐달라, 라는 건 참 무슨 경우인가.
그 당신의 손해란 게, 상대적 비중으로 따지면 자신이 받은 손해와는 게임도 안되게 크다는 걸 알면서도!)
비싼 건 턱 잘 사면서 콩나물값은 굳이 깎게 되는 법이라 했나.
봐주는 거, 정말 봐주고 싶을 때만 봐줄 수 있으면 좋겠다.
봐달라는 말, 정말 써야할 사람들만 썼으면 좋겠다.
작은 것에 탐욕스런 사람들의, 그것도 당당하게 내뱉는 "봐달라"는 말은
안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약자가 강자의 넓은 아량을 구하여 강자에게 청할 수 있는
그런 행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 말이 정반대로 쓰이고 있는 걸 종종 본다.
재밌는 것은 강자가 사회경제적 약자임에 분명한 사람에게 이 봐달라 식으로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려 할 때, 종종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딱한 처지란, 알고 보면 참 말도 안되거나, 말이 되더라도 그 상대방 약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건 안되는게 보통이다.
물론 그 손해라는 게 때로는, 액면가로만 치면 약자가 평생토록 손해 혹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액수를 훨 넘기도 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데에서 손해를 봐서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이 일에 대해선 당신이 좀 손해를 봐달라, 라는 건 참 무슨 경우인가.
그 당신의 손해란 게, 상대적 비중으로 따지면 자신이 받은 손해와는 게임도 안되게 크다는 걸 알면서도!)
비싼 건 턱 잘 사면서 콩나물값은 굳이 깎게 되는 법이라 했나.
봐주는 거, 정말 봐주고 싶을 때만 봐줄 수 있으면 좋겠다.
봐달라는 말, 정말 써야할 사람들만 썼으면 좋겠다.
작은 것에 탐욕스런 사람들의, 그것도 당당하게 내뱉는 "봐달라"는 말은
안듣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