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보름 정도를 들여다본 미국, 아메리카는
무엇보다 배둘레가 엄청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머리 속에 각인된다.
넓다란 땅덩어리에 먹을 것과 볼 것의 풍부함이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이 먼 나라를 기웃거리면서, 척박한 한반도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나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다리위에 얹어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배들을 보면서
전지구 자원의 40%를 소비한다는 그들의 끝모르는 욕망에 잠시 잠시 할 말을 잊는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타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다.
라스베가스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파리 에펠탑 같은 문화유산의 이미테이션 구조물들이 너무나 거대하고 장엄하게 들어앉아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유명한 공연작품들이 폼나게 재현되고 있었다.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너무나 훌륭한 미술관들에서는 유럽,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거장들의 예술작품들이 정말 아무렇게나 많이 걸려 있고,
(이들 미술관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오리지널 작품들 앞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드로잉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열악한 예술교육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딘가에는 다른 나라의 다리를 그대로 날라와 옮겨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의 이러한 방식은 인간들의 세상 뿐만 아니라 동물의 왕국에도 마찬가지인듯,
샌디에고의 씨월드에는 바닷속 생태계의 훌륭한 축소판들이 갖은 볼거리로 즐비해있고,
미국인들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갖은 동물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풍요의 이면을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흑인, 멕시코인, 히스패닉...
이들의 존재는 존재자체로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수준을 결정하고 집값을 결정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곳일 수록 집값이 싸지는 식이다.
백인들 뿐만 아니라 특히 엘에이 한인타운의 한국인들은,
이들이 많이 있는 곳에 다니지 않으며, 이들이 타는 버스를 절대 타지 않는다.
(동생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음 버스를 타고 다니다 온 날, 나는 동생부부의 엄청난 원망과 걱정을 들어야했으며,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는 여러 한인들의 거의 협박에 가까운 주의를 들어야했다. 심지어... 사우나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이즈가 옮을 거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 )
그들은 위험하다, 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들이 위험하여 무서운 것보다는 그들을 싫어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임을 알아차리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컴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타적인 백인이 주류인 적응해 살면서 이식된 컴플렉스가, 백인에 대한 동일시와 다른 타인에 대한 경멸로 나타나는...
"멋모르는" 이방이인 내게, 흑인, 멕시코인들은 더 없이 친절하고 낙천적이며 거리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친밀함이 온 몸에 넘쳐 흐르는 순수하고 활기찬 인간유형으로만 보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흉흉하게 전해지는 범죄사건들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의 불안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한인들의 배타적 태도는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게 사실이고,
이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렌즈를 들이대고 싶어 안달인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흑...그것이 꽤 우울하다.
(나는 이것이 고작 우울할 뿐이나, 그런 타자의 삶을 살아내야하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 것인가!)
무엇보다 배둘레가 엄청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머리 속에 각인된다.
넓다란 땅덩어리에 먹을 것과 볼 것의 풍부함이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이 먼 나라를 기웃거리면서, 척박한 한반도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나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다리위에 얹어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배들을 보면서
전지구 자원의 40%를 소비한다는 그들의 끝모르는 욕망에 잠시 잠시 할 말을 잊는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타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다.
라스베가스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파리 에펠탑 같은 문화유산의 이미테이션 구조물들이 너무나 거대하고 장엄하게 들어앉아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유명한 공연작품들이 폼나게 재현되고 있었다.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너무나 훌륭한 미술관들에서는 유럽,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거장들의 예술작품들이 정말 아무렇게나 많이 걸려 있고,
(이들 미술관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오리지널 작품들 앞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드로잉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열악한 예술교육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딘가에는 다른 나라의 다리를 그대로 날라와 옮겨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의 이러한 방식은 인간들의 세상 뿐만 아니라 동물의 왕국에도 마찬가지인듯,
샌디에고의 씨월드에는 바닷속 생태계의 훌륭한 축소판들이 갖은 볼거리로 즐비해있고,
미국인들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갖은 동물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풍요의 이면을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흑인, 멕시코인, 히스패닉...
이들의 존재는 존재자체로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수준을 결정하고 집값을 결정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곳일 수록 집값이 싸지는 식이다.
백인들 뿐만 아니라 특히 엘에이 한인타운의 한국인들은,
이들이 많이 있는 곳에 다니지 않으며, 이들이 타는 버스를 절대 타지 않는다.
(동생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음 버스를 타고 다니다 온 날, 나는 동생부부의 엄청난 원망과 걱정을 들어야했으며,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는 여러 한인들의 거의 협박에 가까운 주의를 들어야했다. 심지어... 사우나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이즈가 옮을 거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 )
그들은 위험하다, 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들이 위험하여 무서운 것보다는 그들을 싫어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임을 알아차리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컴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타적인 백인이 주류인 적응해 살면서 이식된 컴플렉스가, 백인에 대한 동일시와 다른 타인에 대한 경멸로 나타나는...
"멋모르는" 이방이인 내게, 흑인, 멕시코인들은 더 없이 친절하고 낙천적이며 거리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친밀함이 온 몸에 넘쳐 흐르는 순수하고 활기찬 인간유형으로만 보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흉흉하게 전해지는 범죄사건들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의 불안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한인들의 배타적 태도는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게 사실이고,
이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렌즈를 들이대고 싶어 안달인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흑...그것이 꽤 우울하다.
(나는 이것이 고작 우울할 뿐이나, 그런 타자의 삶을 살아내야하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