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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나는...

kalos250 2004. 3. 13. 02:17
전생에 나는 무지하게 게으른 사람이었나부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댓가로 이생에 실속없이 바쁘기만한 삶을 살게 되었나보다, 라고 말하면 분명 친구는 또 "너무 바쁜 척 한다" 고 핀잔을 줄 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엔 정말 바쁘다.
문제는 - 전생의 삶으로 인해 몸에 밴 관성을 이생에 버리지 못하고 끌고 왔음인지 - 천성적인 게으른 관성 때문에 바쁜 일상이 무척이나 버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난 원래 일복이 많은 사람인가봐.. 어쩌겠어." 라는 말로 자신을 설득하고 다독이다가도, 내가 지금 무엇을 이리 버겁게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해본다.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나를 많이 지치게 하는 이유로, 힘차게 즐거운 맘으로 시작한 일조차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말 예기치 못했던 것중에 하나는 이 대통령 탄핵 정국이겠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의심케하는..
놀란 가슴으로 티비토론을 지켜보는데, 혹독한 시간을 보내 초췌해진 얼굴에 눈빛만이 형형한 유시민 의원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요기까지 끄적이다 핸드폰이 울려서 전화를 받아보니. 오늘의 사태를 슬퍼하며
잔뜩 알콜을 섭취해버린 후배녀석이다.
지 심정을 알아줬다고, 예리해, 한 마디로 끊어버리는 전화에 픽 웃음이 났다.

며칠 전 이 녀석은 "사랑했어요.. 그 땐 몰랐지만.. " 이런 대중가요 가사를 예로 들어
이렇게 유치 찬란한 말들이 멋진 대사가 될 수 있음을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오늘은 슬픈 날이지만, 슬픔도 때로는 힘이 됩니다." 라는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말이 다소 격앙된 유의원의 펜에서 나오자 멋진 대사가 된다.

그리하여 화가 났던 일도, 내 하릴 없는 투정도, 혼란스러움과 슬픔도 좀 희석되어 버리고, 내가 캔디노래라고 명명한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이 비추니까. 눈물 나게 아픈 날엔 크게 한 번 소리를 질러봐
내게 오려던 연약한 슬픔이 다 달아날 수 있게..."
(이 유치한 가사의 노래는 내가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노래 중 하나인데,
부르면 기분이 좀 좋아진다.)

좋아질 것이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고 그 믿음의 시효가 아직 유효해 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