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nge

Desire Line

kalos250 2004. 11. 29. 02:08
"공원이나 기타 공공 장소의 잘 만든 포장 도로 외에, 어떤 A지점과 B지점 사이를 질러가기 위해 사람들이 임의로 만든 비공식 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들이 만든 길에 대해 도시 계획가들은 Desire Line이라는 사랑스럽고 서정적인 이름을 붙였다... Desire Line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이론가들이 만든 길보다는 인간의 본능이 더욱 강하다는 점이다."

페이스 팝콘, <미래생활사전 中>

한가한 일요일 저녁부터, 갑자기 지독한 두통과 구토가 밀려왔다.
한 두 차례 된통 아팠던 기억이 생생한 나는, 퍼뜩 겁이나서
한의원을 하는 동생부부-나의 주치의가 일러준대로
손발을 따고, 쑥뜸을 뜨고, 한약을 먹는 난리를 피웠다.
타이레놀도 먹을까 고민하다, 잠시 보류하고
왜 지금 아픈 건지를 헤아려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주치의의 명을 어기고 먹지 말라는 음식-피자-를 먹은 것.
사람들은 잘 이해를 안해주고 돌팔이 아냐. 그러지만, 사실 주치의가 지정해준 음식 외에 딴 걸 먹으면 곧 반응이 나타나 몸이 안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외에 또 한가지 짚이는 것이 있다.
내일 해야하는 일이... 하기 싫은 것이다.
해야한다는 논리적 판단에 맞서, 하기 싫다는 나의 본능이 나의 육체를 아프게 하는 것일 수도..

이성복 시인은,
"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童貞)을 믿는다" 라고 하드만,
정신이 육체에 가하는 그런 영향이 뭐 그리 수치스럽기까지야.. 라고 생각하는 나는,
내 안의 본능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하기 싫었냐..' 라고

또 그렇다고 Desire Line이 사랑스럽고 서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에고.. 두통이 점점 심해지니 아무래도 마지막 남은 처방, 타이레놀을 먹고 잠을 청해야겠다.
낼 아침엔 멀쩡해져서 한 주동안 행복하세요!를 외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