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Waltzing Matilda
한국인에게 애국가보다 더 친숙한 노래를 꼽으라면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아리랑을 꼽을 수 있듯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에게도 그러한 노래가 있는데 "Waltzing Matila"가 바로 그 노래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국가를 제정할 때 4곡의 후보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이 노래는 여러 영화에서 주제가로 쓰기도 했고 많은 음악가들이 즐겨 부르거나 연주할 만큼 그 멜로디가 아름답고 친숙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이 곡이 에릭 보우글 (Eric Bogle)이라는 가수에 의해서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진 것은 1972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ANZAC의 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의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이 날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모든 술집과 가게가 문을 닫는 유일한 날이다. 이 날에는 참전용사들이 행진을 하는데 이 행진을 본 에릭 보우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인 Waltzing Matilda의 선율과 가사를 기본으로 하여 20세기 말에 가장 아름다운 반전가요를 만들었다.
민요와 전몰장병과 그리고 반전가요, 어떤 사실이 이 세가지를 하나로 연결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이 노래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게 된 것일까?
1. 1995년 뉴욕
1995년 뉴욕의 조그만 공연장인 The Bottom Line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여자 포크가수들이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 Joan Baez의 주무대인 이 공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여류 포크가수들인 Indigo Girls, Mary Chapin Carpenter 등이 게스트로 참가한 역사적인 공연이었으며 이 실황은 Ring Them Bells라는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의 두 번째 수록곡은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라는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노래가 전쟁에 반대하고 젊은이들에게 징집을 거부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60년대 미국의 베트남 개입당시 "꽃들은 어디로 갔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라는 반전노래를 불렀던 Joan Baez가 이런 성격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지만 1991년에 공연장에서 불리는 이 노래에 대한 호기심을 나는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이 노래가사에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명과 인명이 나왔고 더군다나 "Waltzing Matilda"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지 더욱 더 알 수 없었다.
2. 1998년 서울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난 한국방송이 낸 "봄" 이라는 음반에서 다시 "Waltzing Matilda"라는 노래를 들었다. 이 음반의 설명서에 이 노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라는 짤막한 설명만이 있었고, 선율과 가사는 내가 이전에 들었던 노래와는 비슷하긴 했지만 내가 먼저 들었던 노래에 있었던 가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후 여러 재즈음반에서, 선명회합창단의 노래모음에서 그리고 심지어 "천년의 소리"라는 국악음반에서도 "Waltzing Matilda"를 들을 수 있었지만 Joan Baez가 노래했던 그 슬픈 가사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두 노래사이에 어떤 변화가 존재했던 것일까?
3. 1915년 터키-갈리폴리의 비극
1915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영국은 당시 제정러시아와 손을 잡고 도이칠란트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러바로 AMZAC 즉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이다. 이들은 카이로에서 수송되어 1차 상륙작전에 성공하여 해안지대에 참호를 파고 터키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의 터키군의 지휘관은 후에 오스만투르크를 멸망시키고 터키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이었다. 갈리폴리의 비극의 플롯은 이렇게 하나 하나 역사적 주인공들을 기가 막히게 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1차 상륙작전에 성공한 해밀턴은 영국군을 갈리폴리에 상륙시키기로 하고 4월 25일 함포사격이 끝나는 6시에 대기하고 있던 ANZAC 군에게 터키군의 진지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제히 함포사격이 시작되고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함포에서의 시계와 참호속에서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ANZAC장교들의 시계는 그 걸음걸이를 달리하고 있었다.함포에서의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가르키고 있었지만 ANZAC 장교들의 시계는 약속이나 한 듯이 늦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선통신기기가 없고 오직 연락병의 뜀박질에만 의존했던 시절, 함포와 참호간에는 이런 시간적 오차를 조절할 기술이 없었고 6시가 되자 함포사격이 멈추어졌고, 자신들의 시계가 아직 6시가 되지도 않았지만 함포사격이 멈추어 진 것에 ANZAC 장교들이 의아해 하는 몇 분의 그 짧은 시간동안 터키군들은 이미 자신들의 대포와 기관총과 모든 무기에 장전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6시가 되자 공격명령을 받은 일선의 병사들이 터키군의 진지를 향해 돌격을 감행하였고, 그들은 마침 기다리고 있던 터키군의 기관총세례에 몇 발짝 나가지도 못한 채 "마치 도살장의 양떼들처럼" 쓰러져갔다. 일선 병사들과 함께 있던 지휘관들은 이 상황이 공격을 감행하기에 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안전한 지대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연대장들은 해밀턴장군에게 받았던 명령에 따라 돌격만을 명령했던 것이다.연락병들이 이 상황을 지휘본부에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6시에 예정된 돌격은 명령대로 감행되었고 연락병이 지휘본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ANZAC군은 전멸상태였다. 이 전투에서 무려 5만명에 이르는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25만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나왔다.
*참고: 이 전투를 다룬 영화 겔리폴리에서 멜 깁슨은 연락병으로 나왔다.
이 전투는 영국군의 완벽한 패배로 기록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이전쟁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라는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 외는 없었다. 아무런 명분없는 전쟁에서 무려 5만명이라는 젊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25만명에 이르는 불구자가 생긴 것이다.
4. 1972년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의 4월, ANZAC의 날 행진을 젊은 가수 에릭 보우글이 보고 있었다. 노병들은 군악대가 연주하는 "Waltzing Matilda"에 맞춰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노병들의 행진을 보고 있던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 사람들은 소집에 응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전쟁에서 죽어간다. 남은 이들은 얼마되지 않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누가 이런 행진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호전적 애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래인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를 만든다. 그가 지은 노래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인 Waltzing Matilda는 후렴구로 사용되며 그가 지은 가사에는 Gallipoli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이 고스란히 한 참전병사의 읊조림에 의해 담겨져 있다.
5. 1982년 5월 25일 NDR-FM, 북독일 FM 방송국
1982년 4월 대서양 남쪽 끝 포클랜드섬에 아르헨티나군이 상륙하고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연방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수인 에릭 보우글은 북독일라디오방송국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전쟁을 책동하는 바보 같은 설교를 중단하라면서…… Waltzing Matilda라는 말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도이칠란트의 이민자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altzing의 어원은 무역을 배우면서 여행한다라는 뜻을 지닌 auf der walz 다.당시에 잠잘 곳을 해결할 수 있는 곳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장인 무역업자들 밑에서 젊은이들은 도제수업을 받으면서 전국을 여행하였다.Matilda는 고대 게르만 언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그 뜻은 "힘센 전쟁터의 여인"이다. 이말의 기원은 유럽의 "30년 전쟁"의 기간동안 전쟁터를 따라 다닌 여인들을 일컫는데 있다. 나중에는 "야간 보온"이라는 뜻으로 변형되었다가 군용담요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 군용담요는 행군중에는 돌돌 말아서 그들의 배낭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따라서 Waltzing Matilda라는 말은 자신의 소지품을 담요에 싸서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말하게 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뜨내기노동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6. 2002년 6월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토종한국인보다 더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러시아인-한국인인 박노자교수가 양심적병역거부자인 오태양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귀화한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담고서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모아 논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서문에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할 만큼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단히 폭력에 대한 거부와 평화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 그에게서 나는 이 노래를 듣는다.
Joan Baez가 20여년의 차이를 두고 부른 노래는 비록 가사와 선율은 다르지만 전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은 징집에 응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계속 사라져 갈 것이고….그들에게 바쳐질 꽃도 사라져 갈 것이다…"
* 고등학교 때던가, Joan Baezd의 LP로 먼저 들었던 노래인데, 처음엔 같은 노래인 줄 몰랐다.
노래는.. 이렇게 부드러운 것으로 크고 강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20자음악평에 올려져 있으니 들어보시라...
한국인에게 애국가보다 더 친숙한 노래를 꼽으라면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아리랑을 꼽을 수 있듯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에게도 그러한 노래가 있는데 "Waltzing Matila"가 바로 그 노래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국가를 제정할 때 4곡의 후보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이 노래는 여러 영화에서 주제가로 쓰기도 했고 많은 음악가들이 즐겨 부르거나 연주할 만큼 그 멜로디가 아름답고 친숙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이 곡이 에릭 보우글 (Eric Bogle)이라는 가수에 의해서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진 것은 1972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ANZAC의 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의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이 날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모든 술집과 가게가 문을 닫는 유일한 날이다. 이 날에는 참전용사들이 행진을 하는데 이 행진을 본 에릭 보우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인 Waltzing Matilda의 선율과 가사를 기본으로 하여 20세기 말에 가장 아름다운 반전가요를 만들었다.
민요와 전몰장병과 그리고 반전가요, 어떤 사실이 이 세가지를 하나로 연결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이 노래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게 된 것일까?
1. 1995년 뉴욕
1995년 뉴욕의 조그만 공연장인 The Bottom Line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여자 포크가수들이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 Joan Baez의 주무대인 이 공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여류 포크가수들인 Indigo Girls, Mary Chapin Carpenter 등이 게스트로 참가한 역사적인 공연이었으며 이 실황은 Ring Them Bells라는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의 두 번째 수록곡은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라는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노래가 전쟁에 반대하고 젊은이들에게 징집을 거부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60년대 미국의 베트남 개입당시 "꽃들은 어디로 갔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라는 반전노래를 불렀던 Joan Baez가 이런 성격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지만 1991년에 공연장에서 불리는 이 노래에 대한 호기심을 나는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이 노래가사에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명과 인명이 나왔고 더군다나 "Waltzing Matilda"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지 더욱 더 알 수 없었다.
2. 1998년 서울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난 한국방송이 낸 "봄" 이라는 음반에서 다시 "Waltzing Matilda"라는 노래를 들었다. 이 음반의 설명서에 이 노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라는 짤막한 설명만이 있었고, 선율과 가사는 내가 이전에 들었던 노래와는 비슷하긴 했지만 내가 먼저 들었던 노래에 있었던 가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후 여러 재즈음반에서, 선명회합창단의 노래모음에서 그리고 심지어 "천년의 소리"라는 국악음반에서도 "Waltzing Matilda"를 들을 수 있었지만 Joan Baez가 노래했던 그 슬픈 가사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두 노래사이에 어떤 변화가 존재했던 것일까?
3. 1915년 터키-갈리폴리의 비극
1915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영국은 당시 제정러시아와 손을 잡고 도이칠란트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러바로 AMZAC 즉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이다. 이들은 카이로에서 수송되어 1차 상륙작전에 성공하여 해안지대에 참호를 파고 터키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의 터키군의 지휘관은 후에 오스만투르크를 멸망시키고 터키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이었다. 갈리폴리의 비극의 플롯은 이렇게 하나 하나 역사적 주인공들을 기가 막히게 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1차 상륙작전에 성공한 해밀턴은 영국군을 갈리폴리에 상륙시키기로 하고 4월 25일 함포사격이 끝나는 6시에 대기하고 있던 ANZAC 군에게 터키군의 진지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제히 함포사격이 시작되고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함포에서의 시계와 참호속에서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ANZAC장교들의 시계는 그 걸음걸이를 달리하고 있었다.함포에서의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가르키고 있었지만 ANZAC 장교들의 시계는 약속이나 한 듯이 늦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선통신기기가 없고 오직 연락병의 뜀박질에만 의존했던 시절, 함포와 참호간에는 이런 시간적 오차를 조절할 기술이 없었고 6시가 되자 함포사격이 멈추어졌고, 자신들의 시계가 아직 6시가 되지도 않았지만 함포사격이 멈추어 진 것에 ANZAC 장교들이 의아해 하는 몇 분의 그 짧은 시간동안 터키군들은 이미 자신들의 대포와 기관총과 모든 무기에 장전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6시가 되자 공격명령을 받은 일선의 병사들이 터키군의 진지를 향해 돌격을 감행하였고, 그들은 마침 기다리고 있던 터키군의 기관총세례에 몇 발짝 나가지도 못한 채 "마치 도살장의 양떼들처럼" 쓰러져갔다. 일선 병사들과 함께 있던 지휘관들은 이 상황이 공격을 감행하기에 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안전한 지대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연대장들은 해밀턴장군에게 받았던 명령에 따라 돌격만을 명령했던 것이다.연락병들이 이 상황을 지휘본부에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6시에 예정된 돌격은 명령대로 감행되었고 연락병이 지휘본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ANZAC군은 전멸상태였다. 이 전투에서 무려 5만명에 이르는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25만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나왔다.
*참고: 이 전투를 다룬 영화 겔리폴리에서 멜 깁슨은 연락병으로 나왔다.
이 전투는 영국군의 완벽한 패배로 기록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이전쟁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라는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 외는 없었다. 아무런 명분없는 전쟁에서 무려 5만명이라는 젊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25만명에 이르는 불구자가 생긴 것이다.
4. 1972년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의 4월, ANZAC의 날 행진을 젊은 가수 에릭 보우글이 보고 있었다. 노병들은 군악대가 연주하는 "Waltzing Matilda"에 맞춰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노병들의 행진을 보고 있던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 사람들은 소집에 응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전쟁에서 죽어간다. 남은 이들은 얼마되지 않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누가 이런 행진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호전적 애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래인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를 만든다. 그가 지은 노래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요인 Waltzing Matilda는 후렴구로 사용되며 그가 지은 가사에는 Gallipoli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이 고스란히 한 참전병사의 읊조림에 의해 담겨져 있다.
5. 1982년 5월 25일 NDR-FM, 북독일 FM 방송국
1982년 4월 대서양 남쪽 끝 포클랜드섬에 아르헨티나군이 상륙하고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연방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수인 에릭 보우글은 북독일라디오방송국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전쟁을 책동하는 바보 같은 설교를 중단하라면서…… Waltzing Matilda라는 말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도이칠란트의 이민자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altzing의 어원은 무역을 배우면서 여행한다라는 뜻을 지닌 auf der walz 다.당시에 잠잘 곳을 해결할 수 있는 곳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장인 무역업자들 밑에서 젊은이들은 도제수업을 받으면서 전국을 여행하였다.Matilda는 고대 게르만 언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그 뜻은 "힘센 전쟁터의 여인"이다. 이말의 기원은 유럽의 "30년 전쟁"의 기간동안 전쟁터를 따라 다닌 여인들을 일컫는데 있다. 나중에는 "야간 보온"이라는 뜻으로 변형되었다가 군용담요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 군용담요는 행군중에는 돌돌 말아서 그들의 배낭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따라서 Waltzing Matilda라는 말은 자신의 소지품을 담요에 싸서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말하게 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뜨내기노동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6. 2002년 6월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토종한국인보다 더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러시아인-한국인인 박노자교수가 양심적병역거부자인 오태양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귀화한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담고서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모아 논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서문에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할 만큼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단히 폭력에 대한 거부와 평화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 그에게서 나는 이 노래를 듣는다.
Joan Baez가 20여년의 차이를 두고 부른 노래는 비록 가사와 선율은 다르지만 전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은 징집에 응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계속 사라져 갈 것이고….그들에게 바쳐질 꽃도 사라져 갈 것이다…"
* 고등학교 때던가, Joan Baezd의 LP로 먼저 들었던 노래인데, 처음엔 같은 노래인 줄 몰랐다.
노래는.. 이렇게 부드러운 것으로 크고 강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20자음악평에 올려져 있으니 들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