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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너는 여자'에게

kalos250 2002. 11. 11. 11:43
휴일에 동생의 여행사진을 현상하러 사진관에 갔다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남아 근처 책방엘 들렀답니다.
어느 책을 집어들어 무심코 페이지를 넘겼는데 이런 글이 적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허름한 종이에 서둘러 옮겨적었지요, 문세정식. ^^*
아기의 원피스와는 상관없을테지만 문득 눅눅진 마음을 널고 있거나 또는 뽀송뽀송 아주 잘 마른 마음을 거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여자가 생각나서요.
또한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우리의 살에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을 걷고 있다. 런닝 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인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밑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빨래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어물거리는 바람, 어물거리는 구름들.

그 여자는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무용수처럼 발끝을 곧추세워 서서 허공에 탁탁 털어 빨랫줄에 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여자의 무용은 끝났다. 그 여자는 뛰어간다. 구름을 들고.

                                                        빨래 너는 여자 * 강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