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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녀와서...] 2000. 4. 11

kalos250 2002. 10. 22. 02:29





우연찮게 샤머니즘에 관한 다큐멘타리 제작팀에 끼여 헝가리를 다녀왔습니다.
절대적으로 체험되던 시간과 공간, 나의 '존재형식'으로 엄연하기만 하던 그 좌표를 처음으로 아주 멀리 벗어나 보니, 빡빡한 일정과 낯선 도시에서의 설레임 속에서도 내 자신의 삶의 자리가 자꾸 돌아봐졌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비행기에서부터 와아, 함성을 자아낸 확 트인 평화로운 평원을 달려 도착한 고즈넉한 도시.
'아름답고 푸른'은 아니지만, 부다와 페스트를 나누며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혹은 다뉴브는 영국식과 독일식 말이고, 그곳 말로는 두나라고 한답니다.) 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들. 강언덕에 자리한 고성들과 거리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이, 오랜 시간을 견뎌 쌓아온 깊은 빛을 발하는 곳.
과거와 현재가 다정하게 조화로운 그곳에서, '조국근대화의 역사적 폭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깡그리 사라져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안쓰럽게 떠올려보게 되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겠지요.
휘황한 네온사인, 찬란한 쇼윈도우의 소비문화에 점령당하지 아니한 채, 정신적인 여유와 문화의 향기를 누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부러운 시선으로 지나치는데, 우리의 척박한 지리적 환경, 그보다 더 열악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우리네 사람들이 이 정도의 심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싶었던 건, 너무 지나친 감상이었을까요?

헝가리의 샤먼 전통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몇 몇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이번 여행에서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호흡하면서 자연과 우주와 교감하려는 그들.  소박한 삶 속에서 누리는 여유와 행복을 엿보면서, 그들이 누리는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그로 인해 발하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몇 년 전, "나도 딴 세상을 보고 싶어" 투정을 해대던 때에 읽었던 최영미 시인의 유럽 기행문 <시대의 우울>이란 책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일상은 위대하다. 삶이 하나의 긴 여행이라면, 일상은 아무리 귀찮아도 버릴 수 없는 여행가방과 같은 것. 여행을 계속하려면 가방을 버려선 안 되듯, 삶은 소소한 생활의 품목들로 나날이 새로 채워져야 한다. 그 뻐근한 일상의 무게가 없으면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을 떠돌 것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 글이 생각났던 건, 여행에서 만났던 두 사람 때문이었을 겁니다. 두고 온 어린 아가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 걱정으로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독일 유학생 언니와, 다시 돌아와서 연장시켜야할 삶의 무게 때문에 "돌아가기 싫어" 중얼거리던 동행인. 결코 다르지 않은 애틋한 감정을 가슴 가득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을 보면서 그들이 두고 왔던 것, 그리고 돌아가야할 것들을 생각해보는데, 공허한 내 삶의 자리 속에 부재한 "그 뻐근한 일상의 무게"가 못내 아쉬워지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내 삶 안에서 그 무게를 만들어나가야 할른지...  

그런 상념들로 늘어진 몸을 끌고 돌아와보니, 다시 만나는 풍경들과 사람들이, 그들이 건네는 반가운 인사와 따뜻한 손길이 한층 고마웁고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아참. 한창님에게 시작의 의미를 던져주던 '노란 그녀'는 부다페스트에서도 활짝 피어있더군요. 친근한 우리의 꽃으로 생각했던 개나리가 거기 그 이국적인 풍경 속에, 생전 처음 보는 빛깔의 하늘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사진:   1. 부다페스트의 개나리, 그 아래 맛이 간 나
           2. 공원 위에서 바라본 풍경
           3. 긴 여행의 동행이 되어주셨던 분들
           4. 딴지 총수 김어준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발상 전환의 필요성을 체득했다 하는 바로 그 프랑크푸르트 공항  (자세하게 말하자면, 그 공항에서는 우리나라 공항처럼 흡연박스가 따로 없고 사람들이 청사 안에서 담배를 피운단다. 왜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의 권익을 존중해 흡연박스를 만들지 않냐고 질문에 대한 그들이 대답은, 환기시설에 더 투자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면 되지 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권리를 제약하는가, 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