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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kalos250 2006. 6. 12. 22:56
생각해보니 이사를 할 때 많은 책을 버리고 나서부터 책을 거의 사지 않았다.
포장이사를 해준 아저씨로부터 무지하게 잔소리를 들어야했던 책의 무게 역시 버려야할 욕심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또 생각해보니 가만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었던 일도 너무너무 오래 되었다.
그래서 삶이 심플해졌나 하면 ... 오 노다.
그 자리엔 바람직하지 않은 구차한 번민들이 들어서더라.

그래서, 다시 책을 잡아보기로 했다.
사실 며칠 전 어디선가 매력적인 철학박사 강유원씨가 웹기획자라는 걸 읽었다.
웹기획이라면 동종업계인 터 반갑고 신기했다.
이 사람의 말이다.

"속 편하게 학문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지는 것이 학문적 독립성을 지키는 데에는 가장 좋을 것이다. 게다가 직업을 가지면 구체적인 현실 속에 정신이 자리 잡을 수 있고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자학과 자만에 빠지지도 않는다. 글을 통한 현실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차적인 것일 뿐이다. 스피노자를 존경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당장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내가 공부하는 방법', <현대사상> 제9호, 민음사, 1999)

웹기획을 하면서 학문에서 이 정도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는 사람이란 워낙 특출한 경이로운 사람인 것이고, 학문을 하면서 다른 직업을 갖는 건 그런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거 아니냐, 라는 위구심이 들었으나,
높은 경지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상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공부 정도라면야...
다행히 나에겐 직업이 있으니 안경사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스피노자를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다. ㅎㅎ

그래서 나에게 계기를 마련해준 강유원씨의 책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을 비롯한 책 몇 권을 주문했다.
부제가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인 걸 보고, '나를 위한 건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
그의 시선으로 오랫만에 다시 읽는 공산당 선언은, 어떨까 자못 기대된다.

오늘 먼저 도착한 책 중 하나는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이었다.
공지영씨의 글은 오랜 옛날 <고등어> 이후로 전혀 읽지 않았는데 책장을 몇 장 넘기다가,
오래 전에 hotpaper님께서 다신 댓글이 생각났다. "시는, 동년배의식이랄까를 제외하면 도약" 이라는... 시는 아니지만 비슷한 연배의 몇몇 여류 문인들의 글들이 너무나 닮아 있어 이게 동년배의식인가 싶었다.(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
상처, 사랑, 치유, 여행, 위로, 화해...(특히 상처!)  뭐 문학의 일반적인 관심사 이기도 하지면 유난히 두드러지게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재도 스타일마저도 비슷해보인다.

누군가가 내내 울면서 봤다는 걸 보고 주문한 것인데 내 정서가 메말라서인지, 신앙심의 문제인지 좀 민숭맹숭 해서 서너 시간만에 후딱 읽고 신앙심 깊은 언니에게 주었다. 언니는 어떻게 읽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 중에 두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은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내가 상처에 대하여, 그것이 집착인 줄도 모르고, 그 어느 것보다 더 무섭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상처와 집착..... 나 역시 이러한 의식-단어에서 자유롭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