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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

kalos250 2005. 12. 18. 22:38




(내가 있는 이 사진은 photo by Bae)


(신영복 선생님)

더불어숲 연말모임에 다녀왔다. 신선생님 말씀대로 "자주 나가지 않아도 구박받지 않는" 모임이다. 나처럼 일년에 한 두 번 나가도 전혀 개의치 않을 뿐더러 표현해주는 반가움이 오히려 더 크다.
새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현장을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도 반가웁고 즐거운 일이지만, 이미 많은 즐거운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고 나를 기억하고 지켜보아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반가움과 위안과 고마움은 때로 정말 큰 것이다. (한 예로 "요정"이니, "보석"이니 하는 말을 내가 또 어디서 이렇게 들을 수 있겠는가. 워낙 인심이 후하기도 하지만, 항상성을 큰 미덕으로 아는 이 사람들은 아마 내가 크게 어긋나게 살아버리지 않는한 그런 칭찬과 격려를 쉽게 철회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한 번 들은 것으로 우기기만 하면 된다. 흐흐)

모임후 살갑게 다가오는 서른 혹은 서른 한살의 미모의 처자들과, 뼈다귀해장국과 달콤하기 그지 없는 모카 캬라멜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어수선한 얘기들을 주고 받았는데, 대화 중엔 한 처자의 아끼는 후배 얘기가 끼어들어왔다. 좋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굳이 고생이 뻔한 결혼을 하고 힘들어해서 너무나 안타깝다는 사연이었는데, 그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몇 년을 더 살았다는 내가 해준 말은 이런 것이었다. "살다보면.. 최선-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 최선이 아닐 뿐 아니라 차선도 못되는 것들을 선택하는 일이 허다하게 많거든" 이 얘길 들은 두 처자의 반응은 좀 컸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의 감탄사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커뮤니티의 아주 올드멤버-그러나 아주 게으른 비주류멤버-에 속하는데, 나보다 등장이 한참 늦었고 나랑은 두 번째 만남인 한 선배가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이전 게시판에 올랐던 글들을 다 읽어봤고 내가 쓴 게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져 찾아서 몇 개 읽어봤다. 씩 웃게 되는 얘기도 있고 가슴싸아한 감정이 딸려오는 것들도 있고, 좀 치기어린 감상들도 있다. 아니 많다. (이 지루한 걸 그는 어찌 다 읽었을까나..)
어쨌거나 그들의 숲 속에, 나무는 못되더라도 그냥 주변부의 작은 "이끼"인듯 그렇게 있었을 때 나는 지금보단 좀 더 풍요로웠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잠깐 든다.
물론 5, 6년 전의 일이니, 내가 생리적으로도 지금보다야 더 많은 물기를 빨아올릴 수 있는 체관을 지녔을 때의, 그러니까 보다 생기있을 수 있던 때의 일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21일자로 등록되어 있는 글을 보았는데 사소한-어찌나 사소하고 소소한지..- 일상사지만, 오늘 나의 행태와 너무 유사해서 눈에 뛴다.


"인간의 본성에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알맞은 말을 찾으려는 격렬한 욕구가 있지만 이보다 더 강렬한 욕망은 다른 사람이 말로 표현한 것을 눈으로 보려는 것이다." 라는 건 괴테가 했다는 말이다.

그건 정말 격렬한 욕구이고, 강렬한 욕망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가 보는 것에 알맞은 표현을 찾게 되면 그다지도 반갑고, 표현된 양상이 내가 보고 있는 것, 내 현실인식에 맞지 않을 때에는 당황하고 분개하기도 하는 거겠지. 그러니....

오늘은 중복.
어젯밤엔 무지하게 더운데다(27도였다는데) 새로산 PC의 사운드가 안잡혀서 씩씩거리다 잠을 설쳤다. 내 어찌 it업계에 종사하게 되었을고 새삼 의아해하면서. 다들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어제는 퇴근길에 이사를 해야겠다는 회사동료가, '옛날엔 골목길을 무지 좋아해서 골목길만 보이면 돌아가더라도 그리로 다니곤 했는데, 그 때 선배들이, 너 그러다가 평생 골목길에서만 살게 된다고 그랬다.'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야. 취향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거 맞는 말이다. 가끔 나도 내가 왜 이모양으로 사나 생각을 하다가도 돌이켜보면 어떤 선택의 순간에 나를 이렇게 이끈 취향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거든'
이건 그에 대한 내 응수.

나도 이사를 해야한다. 어제 열쇠를 회사에 놓고 가는 바람에 주인아줌마가 문을 열어주셔야했는데, 오랫만에 얼굴을 보는 아줌마 말이 방이 나갈 거 같다 했다. '아직 늦지 않았는데.. 꼭 이사가야하나, 정들었는데 그냥 살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는 주인아줌마.
그러나 내 취향은 이사가는 쪽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어쩔 수 없다.
어디 좋은 동네 있으면 알려줘요.....

  

** 기억을 더듬에 보니, 글에 대한 오해로 불거진 한 후배의 맘 고생에 대한 반응으로 달아놓은 것이었던 듯 한데, 그 내용을 보아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식수준은 바로 제자리임미 판명된다. 최선이나 차선도 안되는 선택을 밥먹듯 하며 살다보니 그런 것이겠지...

그나저나 사진 찍는 사람이 별로 없어보여 사진기를 가지고 폼잡고 설쳐댔는데 사실 후레시나 망원렌즈를 안가지고 간데다 장소가 지독하게 어두워서 사진이 영 신통찮게 나왔다. 이런 경우 나는 꼭 다짐한다. 담엔 꼭 장비를 제대로 챙겨가거나, 그러지 못했을 땐 절대로 사진 찍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그것도 꼭 이 모임에선 후회할 짓을 자꾸 하게 된다.(난 사실 근래엔 공식적인 사진은 거의 안찍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단지, 혼자 가지고 놀 뿐이다. 다음엔 절대로.. 다짐, 다짐) 그건 아무래도 마음 후한 이 사람들의 칭찬 때문인거 같다. 어제는 특히나 신선생님까지 칭찬에 가세를 하셨다. "이렇게 칭찬을 해줘야 잘 찍어줄 게 아니야.." 하시면서...
그리하여 사진을 보며 불편해지는 마음을, 두 사람쯤은 열심히 찍는 것 같아 보였으니 괜찮겠지 하며 애써 달래본다.  

오랫만에 술도 좀 마시고 밤새.. 근래에 안하던 너무나 진중한 얘기들을 듣고 끼어들고 하다보니 무리가 되어 컨디션이 넘 안좋았는데, 한 언니의 정성스런 안마를 받고 뼈다귀해장국을 먹고나니 몸이 거뜬해졌다. 뼈다귀해장국이 이렇게 맛있는줄 몰랐다. 기분이 좋다.
한 해 동안 뭉친 근육과 숙취도 말끔히 제거하고 가뿐하게 한 해를 정리할 준비를 하기 위해 낼 부터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