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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이 좋더라

kalos250 2006. 6. 20. 13:03


△ 설기현 선수는 성실한 플레이로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했다. 설기현 선수가 이탈리아와 격돌한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극적이 동점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설기현이여, 어게인 2002!

성실하게 제힘으로 세상을 헤쳐온 탄광의 소년에겐 감동이 있다…벨기에 마이너리그부터 차근차근 경력 쌓은 우직함이 골 터뜨리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충격이었다. 모두는 아니어도 한둘은 내 생각에 맞장구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천만의 기대, 만만의 콩떡이었다. 내 취향을 번갈아 가면서 무시하더니, 마침내 최악의 대답이 돌아왔다. “차라리 차두리가 낫겠다.” 허걱, 더 이상의 항변은 불가능했다. 무슨 죽을 죄를 졌느냐면, “한국팀 중에서 설기현이 가장 멋지지 않느냐”고 괜스레 말을 건넨 죄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무렵, 친구들에게 넌지시 건넨 한마디는 그렇게 돌팔매로 돌아왔다.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가끔씩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설기현 칭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반드시 돌팔매가 돌아온다.


평가전의 역주행 비난에 담담한 반응


한동안 설기현의 역주행이 인터넷 검색어 정상을 다퉜다. 알다시피, 세네갈과 평가전이 끝난 뒤의 일이다. 설기현은 경기 중 잠시 한국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안 그래도 그의 부진한 플레이에 실망하고 있던 네티즌은 동영상까지 돌려가면서 설기현을 비판했다. 역시나 묵묵한 사나이, 설기현은 잘했을 때 ‘나대지’ 않는 것처럼 잘못했을 때도 주눅들지 않았다.

그의 부인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속상해했지만, 정작 본인은 담담했다. 그는 ‘설기현 역주행’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압박이 심해서 공 줄 곳을 찾지 못했다”면서 “월드컵에 대비하는 과정이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경기의 헤딩골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렇다. 설기현의 잔재주 부리지 않는 성실함이 좋다. 우직하게 치고 들어가서 크로스를 올리거나 스스로 결정을 짓는 설기현의 플레이에서 욕심을 찾기 힘들다. 요즘에는 공을 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설기현이 작심하고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설기현의 플레이에서 제힘으로 세상을 헤쳐가는 노동자의 성실함을 느낀다면 ‘오버’일까. 설기현의 성장사는 이런 심증을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다. 그의 성장사는 마치 켄 로치의 노동계급 드라마 한 자락처럼 보인다. 1979년생인 설기현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막장이던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둘째아들인 설기현이 9살 되던 해에 탄광 사고로 숨졌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네형제를 홀로 키워야 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포장마차도 하고, 막노동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설기현이 월드컵 스타가 된 뒤에도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계속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가난한 어머니는 운동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돈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가난한 소년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중학교 시절 동료들이 팀을 집단 이탈할 때도 혼자 합숙소를 지켰다. 그래서 ‘왕따’도 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설기현은 축구로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난한 소년의 대명사다.

물론 대표팀에는 설기현 말고도 어려운 성장기를 경험한 선수들이 있다. 대개 개천에서 용이 나면, 두 가지 경우로 갈리기 십상이다. 개천의 ‘때국물’을 씻고 싶어서 안달을 하거나, 개천의 추억을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거나. 설기현이 ‘커리어’를 쌓는 방식은 설기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그는 유럽의 빅리그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잉글랜드의 2부리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2000년 유럽에서 비교적 ‘마이너’급에 속하는 벨기에 주필러리그로 먼저 진출했다. 2001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벨기에의 명문 안더레흐트로 이적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했다. 2004년에는 잉글랜드 2부리그인 챔피언십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로 이적하면서 한 번 더 자신을 업그레이드했다. 물론 올 시즌 울버햄프턴에서 부상에 시달리면서 위기를 겪었지만, 그는 누구 못지않게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가 커리어를 쌓는 방식은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지듯 빅리그의 영입 제안을 기다리는 선수들과 달랐다.


체력이 가장 좋은 국가대표 선수


설기현은 마이클 오언과도 닮았다. ‘원더 보이’ 오언은 7살의 ‘보이’ 때부터 동네 친구였던 루이스 본살과 결혼했다. 설기현도 월드컵 유명세를 타기 전인 학창시절에 만난 부인 윤미씨와 결혼했다. 동료 선수가 소개해준 동료의 여동생이었다. 둘은 ‘속도위반’으로 결혼 전 아이를 가진 점도 비슷하다. 그들의 결혼은 그들이 셀러브리티(유명인)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듯한 오언과 성실한 설기현은 이처럼 그라운드 안팎에서 닮은 점이 있다. 오언은 베컴과 대비된다. 베컴은 잉글랜드 최고의 셀러브리티인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빅토리아와 결혼했다.

설기현은 “가족만 아는 사나이”라는 말을 듣는다. 또 그의 성실함은 축구 대표선수 중 체력이 가장 좋다는 면에서도 드러난다. 운동선수의 좋은 체력은 성실한 자기관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변의 핀잔을 감수하면서 오늘도 기다린다. 설기현이 2002년 이탈리아 경기의 동점골처럼, 한 건 멋지게 해주기를. 오랫동안 공들여 차곡차곡 쌓아온 무언가가 터지는 것처럼, 그의 골에는 남다른 감동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가 그가 이룬 슬로건이라면, ‘Again 2002’는 그가 이룰 슬로건이다.




거리 응원을 나가서 축구를 보는 것의 단점은 선수들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이고 해설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다시 티비 앞에 앉아 경기를 봐야했는데, 거기엔 반갑게도 설기현이 있었다.
설기현. 2002년 회사동료들과 경기를 보면서 누군가가 "억울하게 생긴데다 경기 하는 것도 짜증나" 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영 거시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가 2002년 골을 넣었을 때 기쁘면서 안도하기도 했고,
독일에 나갔던 그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땐 한층 자신감과 여유를 찾은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우연히 설기현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었다.
맞아, 나도 이런 사람이 좋더라, 하고.
성실함과 우직함, 그리고 라군의 표현에 의하면 (아무리 처지가 변해도)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는"*

* 어제 라군과 에에센으로 386이 말아먹는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었다.

라 : 운동과 이념은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이니 일관성은 있지... 난 존재를 배반해야 한다고 봄
나 : 나도 존재를 배반하고 싶은데, 존재가 그대로니
라 : 존재가 변하고 싶다겠지. 의식은 그대로고... 머 양호함
나 : 존재가 그대로라 의식이 그대로라고 하면 할 말이 엄자너... (-,.-)
라 :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