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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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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

kalos250 2005. 3. 30. 23:02
서양미술 400년전을 보고 왔다.
오랫만의 전시회 나들이다.
선과 색의 대립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프링스 근대 회화사 400년의 역사를,
너무나 친절한 배치와 이야기 흐름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기간이 꽤 길었는데도 전시장은 빼곡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미는 작품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궁정화가였던 다비드는 혁명 동지 마라의 죽음을
예수의 도상이었던 늘어진 오른팔과 미화된 육체, 표정을 통하여 이상화시켰다고 했다.
이전에 김광석 추모앨범에서,
"별이되어 떠난 친구에게"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마침 전화를 걸어온 이에게, 내가 죽으면 누가, 별이되어 떠난 어쩌구 이렇게 얘기해줄까
했더니,그가 냉큼 혹은 마지못해, 기꺼이 그래주겠노라 했던 일이 있었다..ㅎㅎ
친구였던 마라의 죽음은 이렇게 이상화되었으나
다비드 자신은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비참한 여생을 보냈다 하니...
가여운 일일까.



눈에 많이 익은 이작품은 무척이나 작았다. 세상에 7*11cm라니.
우리는 그동안 도판에서 훨씬 확대된 이미지를 보아왔던 것이었다.
도록을 다시 봐도 그랬는데 확대된 도판에서도 섬세한 붓터치는 조밀하게 빼곡했으니
그안에 쏟은 공력은 대단한 것이었겠다.
옆에서 들여다보던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의 탄성이 들렸다
이것봐. 이 안에 있을 건 다있네. 손가락까지..
흐미...이건 몇 주 안된 태아의 사진을 보았을 때 흘러나오던 얘기가 아니었나.



400년전이라는 전시제목에서 기대가 컸던 탓이었는지,
작품수는 기대에 훨 못미치는 수준이었는데,
그것이 하나하나-그것도 그닥 작가의 대표작이라고도 볼 수 없는-를 찬찬히 볼 수 있는
미덕을 발휘했다.

그래서 발견한 그림.
제목이 <에로스의 위로>였음에도 나르시스가 생각났던 건
작가의 이름이 나르시스 디아스 데 라 페냐, 였기 때문이었을까.
사랑의 신이 저렇게 안타까운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자기안의 슬픔에 갖혀 눈가리고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란 참 쓸쓸해보였는데,
흠.. 작가가 표현하려 했던게 이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여인이 혹 프쉬케인지, 에로스의 위로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딴 생각을 해보기가 몹시 귀찮으므로, 또 그림을 볼 때의 나의 느낌이 강렬한 것이었으므로
지금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 이런 걸 "예술의 2차 생산"이라 하나. 흐흐
(혹 이에 대해 나의 무지를 깨우쳐줄 수 있는 사람은 부디 지식을 나누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