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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칠암리, 통도사...] 1999.10

kalos250 2002. 10. 16. 17:40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곽재구 시인은 말했었다. 여기에서의 삶이 각박할수록 그곳에 대한 향수는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역마에의 꿈도 더욱 커지기 마련이라고. 예기치 않은 쓸쓸함을 통과해왔던 이 가을에, 나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기러웠다.  

칠암리의 밤바다는 칠흙같이 어두웠다. 먼 밤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 내리자,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 비릿한 바다내음은 정제되고 가공되지 아니한 태고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숨을 쉬어 그 내음을 들이키고 한 발을 내딛자 시커먼 바다가 눈앞에 선뜻 다가왔다. 그 위로 희미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물결의 흐름...
동행한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 멀리 한바다에 불빛 가물거린다
아무도 없어라 텅 빈 이 바닷가
물결 사납게 출렁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띄워 볼 조각배가 없는 우리는 물결 사납게 출렁임도 없는 잔잔한 밤바다를 옆에 끼고 한참을 거닐었다. 먹먹한 바다를 거니는 농도 짙은 시간. 시간에도 빅뱅이 있었다면 그 빅뱅은 바다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멀리 수평선 위로 자그만 불빛들이 빛가루들을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빛가루들이 드러내는 잔물결이 우리의 가슴에도 미세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윽해진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자, 언제 나왔는지 건조대 위에서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말을 건네자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주는 아주머니는, 듣고 보니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막내아들이 32살, 이 바다를 삶의 텃밭으로 40년을 살아오셨단다. 40년 동안 지켜온 자리에서 만져온 오징어가 이 분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살아서 팔딱거리는 게 예쁘지. 죽으면 다 똑같아지잖아."
다시 등을 보이고 열심히 늘리고 뒤집어서 오징어의 모양을 만들고 있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떠나며, 팔딱거리며 가슴 뛰는 삶을 사는 일을 생각했다. 은빛 비늘 반짝이며 희망에 찬 바다를 헤엄쳐 가는 일을....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에 섞여 대포항에 도착했다. 대포항은 멸치와 갈치로 유명한 작은 항구이다. 조금씩 미명을 보이기 시작하는 항구에는 집어등을 매단 오징어배가 간간히 착지를 하고 있었다. 착지한 배에서 잡은 오징어를 트럭으로 퍼 올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한 아저씨는 저쪽에서 카메라를 매고 얼쩡거리는 나를 불러 잡은 물고기를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제법 몸집이 커다란 그놈은 도미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싱싱한 아침바다 풍경이었다.

일출 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아래 구름에 가려진 수평선을 보며 조금씩 지쳐갈 무렵, 말간 해가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시시한 얼굴로 말간 해를 보는 느낌은 언제나 부끄러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화사한 빛깔로 눈이 부셔오자 몇 해전 함께 일출을 보던 친구가 생각났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친구는 내 귀에 속삭였었다. "너의 해가 떠오르고 있어." 라고...

그렇게 각자만의 해를 가슴에 품고 통도사로 향했다. 차안에서의 혼미한 잠에서 깨어나 도착한 통도사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절 입구는 번화한 거리였고 바로 앞에는 산능선을 무참하게 잘라내고 우뚝 서 있는 아파트가 눈에 거슬렸다. 마침 이해인 수녀의 강연이 있는 날이어서 그러했는지 사람들과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절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품었던, 도대체 얼마나 큰 절이길래 하는 의문은, 일주문을 들어서자 과연 하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그 자체가 순수목적인 듯 울창한 숲길을 따라 계속해서 들어서 있는 암자들과 박물관 등의 건물들.... 자료에 의하면 암자만 18개가 그 안에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통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의 본산이며 전국에 100여개의 말사와 해외에 10여개의 포교당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염불원(念佛院)을 갖춘 총림(叢林)이라 한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眞身舍利)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 중의 으뜸인 불보종찰(佛寶宗刹)이기도 하다.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자장율사(慈藏 律師)가 부처님의 사리(舍利)와 부처님이 입으셨던 가사(袈裟) 등을 당나라에서 모시고 왔는데, 그 중에서 정골사리(頂骨舍利)와 부처님 가사를 이곳 통도사에 봉안(646년, 선덕여왕 15년) 하였기 때문에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으뜸이 된다. 따라서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았단다.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꽤 의미심장한데, 첫째는 전국의 모든 출가자가 이 계단을 통하여 스님이 된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중생들이 이 도량에서 불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수행하여 진리를 깨우쳐 제도(濟度 =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이며 셋째는,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인도의 부처님 성지와 통한다 하여 통도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산 이름도 인도 왕사성의 영축산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엄청난 통도사를 다 돌아보기에는 남겨진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가벼이 마음을 비우고 서운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찾았다. 특이하게도 항아리를 만들어내는 가마가 있는 곳이었다. 볕 좋은 언덕에 늘어선 항아리들...북경반점이라는 우리영화에서 우와 감탄하며 보았던 항아리들의 행렬이었다. 거기서 자장면의 달인이 남겼던 멋진 말이 생각났다. 춘장, 곧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이라는...

피로에 서서히 젖어가는 몸을 이끌고 절 입구에 있는 통도식당을 찾았다. 푸짐한 산채비빔밥이 메뉴였다. 특이했던 건, 상위에 음식들을 가져와 차리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차려진 엄청나게 큰 상을 직접 들여온다는 것이다. 맛깔스런 산나물이 푸짐한 식사를 끝내고, 볕좋은 식당앞에 쪼그려 앉으니 몸이 스르르 풀려왔다. 그 나른한 느낌을 즐기며 옆에 앉은 친구에게 몸을 기대니,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장난스레 속삭여줬다.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떠나올 때보다 더욱 멀었다. 차가 막히지 않더라도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그랬다. 산에 오를 때도 내려오는 길은 더 힘들기 마련이었다. 애써 찾아가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역마 '의 꿈을 안고 떠났던 부산 칠암리·대포항·통도사길에서 본 것은 분명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과연 세상은, 최영미 시인의 싯구절처럼
이토록 아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 이었다.

(SBS Power English 1999.11)

* 이 글을 쓰고 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막 놀렸다. 친구들이 정말 이런 식으로 말하냐고.
생각해보면 그랬다. 젊은 날의 우리는 서로에게 참 애틋하게 소중했고,
그렇게 전해지던 마음이 그 시절에, 또 이후 삶에서도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가 엄마가 된 현지에게, 동규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 아가가 살아갈 세상이 그렇게 내내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가난한 친구가, (현지 너의 말대로) 큰 마음으로 축복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