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다시 가본 동물원

kalos250 2002. 10. 17. 17:48




서울 대공원 전철역에서 내려 서울대공원에 가기로 했다. 수도의 이름이 고유명사로 붙고 큰 대(大)자까지 붙어있는 대공원은 참 넓어서 선택이 필요했다. 그래서 드림랜드에서 하늘을 나는 꿈을 접고, 미술관을 지나쳐 동문으로 들어가 "미술관옆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함께 간 후배녀석을 위해 리프트를 타자 온공원이 아래로 펼쳐졌다. 리프트는 무지하게 긴 것만 같았는데, 물어보니 1Km라 했다. 아래 정문으로부터의 구간을 합하면 총 2Km다. 2Km를 그렇게 지나 사뿐히 땅에 착륙을 하여, 거기서부터 바로 동물원 순례를 시작했다.  

"동물원에 가보았지-"로 시작하는 동물원의 노래 <동물원>를 처음 들었을 땐, 생각했었다. '치, 동물원에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노래를 계속 들어보니 그게 자랑이 아니었다.

동물원에 가 보았지
추워 움츠린 어깨로 저물어 가는 햇살을 받으며 두리번거렸지
동물원에 가 보았지
흔들거리는 걸음에 바람은 갈색 나뭇잎 날리며 흩어져 버렸지
고무 풍선을 움켜쥔 아이와 하품하는 사자들과
우리 안을 맴도는 원숭이는 지나온 내 모습이었지
쓸쓸한 그 모든 것 사이로 걸어가는 하늘엔
파란색 커다란 풍선이 날아오르고 있었지
동물원에 가 보았지
추워 움츠린 어깨로 저물어 가는 햇살을 받으며 두리번거렸지
문득 걸음을 멈췄지 뭐라 말하려 하였지
성난 파도와 같은 마음으로 말하고 싶었지
고무 풍선을 움켜쥔 아이와 하품하는 사자들과
우리 안을 맴도는 원숭이는 지나온 내 모습이었지
쓸쓸한 그 모든 것 사이로 걸어가는 하늘엔
파란색 커다란 풍선이 날아오르고 있었지
동물원에 가 보았지

의아했다. 왜 모든 것이 그다지도 쓸쓸했을까, 동물원에 가는 경험은 미지의 세계를 안전하게 탐험하는 즐거운 경험이 아닐까 하고.

날씨 탓일 수도 있었다. 우려했던 바 그대로 하늘은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도 문제였으니, 그 아래  동물원의 풍경이 그렇듯 스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물원의 노래를 떠올려보니, 그게 꼭 날씨  탓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 생각나는 어느 소설 속 고래 이야기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이의 대화. 창우야, 너 고래가 얼마나 큰 물고긴 줄 아니? 집채만 하단다. 정말이요 아버지! 정말, 집채만 해요? 그럼. 어떤 것은 섬보다도 크지!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러 간 창경원에서 진짜 고래를 보았을 때, 주인공은 깊은 우울과 실망에 빠져 버리고 "인간의 삶이란 그렇듯 늘 자신이 그리워하던 고래의 왜소함에 실망하며 진행되는 법"이라고 말하게 된다. (김연수의 소설 중)

동물원은 과연 그런 곳이었다. 집채만해야할 고래가 너무나 왜소한 모습으로 울타리 안에 누워 있는 곳. 그렇게 모든 것이 쓸쓸할 수 있는 곳. 아프리카의 대초원과 끝없는 대양을 누비던 꿈들이 견고한 우리에 갇혀 숨죽이고 있는 곳. 그래서 인기만화에 등장한 속눈썹이 어여쁜 낙타는 말한다.

아가낙타 : 엄마, 우리는 왜 눈썹이 이렇게 길어?
엄마낙타 : 응. 그건 우리가 사막을 지날 때 심한 모래바람을 이기기 위해서란다.
아가낙타 : 등에 있는 혹은요?
엄마낙타 : 응. 그건 우리가 넓은 사막을 지날 때 오랫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단다.
아가낙타 : 근데 왜 우린 다른 애들처럼 굽이 갈라지지 않았나요?
엄마낙타 : 그건 우리가 사막을 지날 때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란다.
아가낙타 : .........   그런데 우린 지금 사막에 있지 않고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동물원 우리에서-- "광수생각"중 )

그 있어야할 곳에 있지 못하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 협소한 질서 속에 갇힌 무기력한 동물들... 늦더위가 버거워 온몸에 푸른 곰팡이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북극곰. 아이들의 끝없는 호출에도 끄떡도 아니하고 눈만 빼꼼 내밀고 마는 하마.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에 걸맞지 않게 익살스럽게 풀을 먹어대는 기린. 철장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산양들의 언뜻 언뜻 마주치는 커다란 눈망울과 그 슬픈 눈빛이란 어찌 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어떤 슬픈 전언인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동물들이란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우화들의 주인공으로서 우리 인간을 반성하여 깨어있게 만들어주었거니와,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는 인간 삶의 원형조차 너무나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드러내주곤 했었던 것을.

동물원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있다. 예컨대 "언젠가 내가 두고 온 꿈들이 자라고 있는 곳" 이기도 하면서, 자라면서 겪어야했던 우울과 실망을 엿보기도 하는 곳. 그래서 동물원에 가보았지, 라는 노래가 그렇게 쓸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가 본 동물원은 그런 곳이었다.

SBS Power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