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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다.

kalos250 2005. 5. 28. 18:54


쪼만한 열대어 두 마리와 자그만 토끼 한 마리의 죽음을 목도하고, 선물로 받은 작은 화분들을 -심지어 선인장까지도- 물을 제대로 안줘 죽여버린 후로 나는 아무런 생물체와도 동거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한... 한달쯤 되었나, 나의 방문앞에는 이런 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왼쪽 젤 첨에 있는 건 고구마다. 얘는 따로 창가에 두고 아침을 시작하며 창을 열 때마다 물을 주고 들여다봐주었더니 한 열흘 만에 싹을 틔웠다. 장하다.

그 옆에 있는 것이 복사꽃이라 하는데 이렇게 향기가 강한 꽃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꽃 피기 전부터 폴폴 스며나오는 향기는 그 뒤에 있는 방향제를 무색케 한다.

그 옆에 작은 양주잔과 허브병에 있는 것은 이름을 모른다. 일산 사는 경숙이네 집에 갔다가 베란다 화분에서 잎파리 몇 개 달린 가지 하나를 떼어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자라났다.
며칠 전 경숙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얘기를 해주고, 경숙이네 있는 것은 시들어버려서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진 잎파리중 하나가 배수구 수채구멍에 걸렸는데, 거기서 성장을 계속한다고 한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경숙이는 그것에 미안하고 안스러워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했다.

뒤에 있는 커다란 것은 공기청정식물이라 해서 방에 있는 산세비리아와 함께 이사를 왔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다. 수경재배라 하여 물만 주는데도 무럭무럭 큰다. 그래서인지 물을 무척이나 많이 먹어서, 얘를 보면 " 넌 왠 물을 이렇게 많이 먹니.." 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그 앞에는 단호박. 삶아먹을려고 샀으나 이뻐서 한동안 두었다. 지난 번 호박죽을 끓여먹은 후로 두 번째로 사보았는데, 사실 이건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오랫동안 삶은 후에도 배를 가르는 일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삶아 먹는걸 계속 미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생해서 가르고 나면 그 샛노란 빛깔은 너무 이쁘고 그 달고도 오묘한 맛은 환상적이다.

오른쪽에는 젊음을 유지해준다는 허브 로즈마리다. 허브중에서는 가장 좋은 향을 지녔다.
그리고 그 뒤에 기다란 목을 내밀고 있는 병은 나혼자 홀짝홀짝 마셔버린 양주병. 병안에 포도가 음각되어 있는데 병이 이뻐 버리지 못하고 두었다.  

이상이 나와 동거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오늘 예스24에서 이런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정하경님은 좋은 엄마라는 걸 YES24는 믿어요~"
결혼도 안한 처자에게 생뚱맞은 얘기인 점은 차치하고라도
좋은 엄마라면, 무슨 치코버블망고향비누나 마이마이 썬스크린로션, 브리태니커 리틀 어쩌구 퍼즐 같은 걸 사야한다고 말하는 게 좀 너무 하다 싶었다

화분 같은 생명체를 키우는 것도 사소하지만 관심과 정성이 필요한 법인데
언제나 시선을 아이에게 고정시켜야하는 엄마가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건실한 식생활을 실천하느라 식비며 가스비 등이 장난 아니게 나와 놀라고 있는 요즘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생각이 이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에 대해 참으로 감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