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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하여

kalos250 2003. 6. 27. 02:16
"우리의 감정엔 권위가 없어. 그냥 예외적인 감정이지..."

전경린의 소설에서 보았던,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 고백이 떠오른 건,
"권위"라는 단어 때문이다.
자신의 애타는 사랑을 "예외적인 감정"이라 고백하는 모습엔
권위가 없어 진짜 순수한 사랑으로 보였다.
예전에 누군가, 동성애만이 순수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일상을 "무수한 바느질 자국을 숨기고 있는 조각보"라 했다는 작가.
그녀가 드러내는 그 상처들은 참 예리하다.

그들은 권위가 없는 사랑 자체가 상처이지만, 때론 부모, 형제 뿐 아니라 연인의 관계에서, 과도한  권위의 존재 혹은 그 권위를 가지고 서로에게 관철시키려는 권력의지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걸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롭게 편안한 행복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권위가 없이 순수한 관계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동성애같은 예외적인 감정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권위라는 단어가 눈에 띄였던 건, 사실 내가 그 단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전공인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  그 분야에 대한 발언을 지지해줄 권위가 내게 없음을 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의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자명한 논리를 가지고 한 발언도 관철되지 않는 일은 나를 조금 지치게 한다.
사소한 일에서, 아주 조금...  뭐 이만함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서 일을 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권위가 많이 필요함을 느낀다.
세상이, 상식이 지지해주는, 백그라운드 같은 권위가...
그런데 왜 우리는 내용이 아닌 외부적인 것들, 세상이 부여해주는 권위 같은 것들에 의존해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도 반항처럼 스쳐가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