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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가기

kalos250 2005. 12. 24. 01:39
* 이 게시판 어딘가엔 오래전에 담아놓은 김용택 시인의 <쓰잘데기없는 내 생각>이란 시가 있다.
무지하게 긴 시를 간단히 옮겨보면,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 가는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피아골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도랑물 건너 왼쪽에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이 하나 산 중턱에 있습니다 혹 그 마을을 눈여겨 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 중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 아, 저기 저 마을에다가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한 여자를 감추어두고 살았으면 '거 을매나 좋을꼬'하는 생각이 바람 없는 날 저녁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혹 댁도 그런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혹'이지만 말입니다 나도 이따금 저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쓸쓸하고도 달콤한, 그러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나 혼자 할 때가 다 있답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면 틀림없이 느긋한 얼굴로 "그래요 그러면 잘해보세요" 하겠지만 말입니다... (중략)

  지리산 피아골 가는길 초꺼듬 왼쪽 도랑물 건너 산 중턱에 있는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은 그 마을이 소생에게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게 한 마을이구나 하며 그냥 흘긋 스치십시오

  거길 누구랑 갔냐구요
  이 세상에서 절대 그냥 비낄수 없는 사람이랑 같이 같구만요  



이 시를 엘군이 타이핑해보내줬을 때, 나는 맨 마지막 구절이 죽인다고 감탄을 했었고, 엘군은 이 한 줄 때문에 이 긴 시를 타이핑했노라고 했었다.
"이 세상에서 절대 그냥 비낄수 없는 사람"  

이상스레 대화가 어긋나거나 서로 의도하지 않게 부딪혀 서걱거리고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되는 요즘엔 "이 세상엔 절대 그냥 비껴가야하는 사람도 있다보다" 라는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 * 12월 24일의 날짜안에 담겨질 글론 영 마땅찮다란 생각을 하면서도, 좀전에 보았다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이런 안부를 또 붙이고만 싶어진다.

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
하냥 멍하니, 있고 싶어요
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
게으른 새처럼
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하게요

-황지우 ' 안 부 2 '-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울리는 발랄한 인사는 아침으로 미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