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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분실(낼까지 불통이야요), 그리운 시절의 추억

kalos250 2006. 3. 15. 22:06
핸드폰 분실
키가 안눌려지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큰 맘먹고 장만했던 핸드폰을 고작 2달인가 쓰고서 분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항상 대기조가 되어있어야하는 프리랜서에겐 오래 지속시킬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하야 핸드폰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애타게 기도하다가 쓰린 가슴 안고서 새 휴대폰을 주문했다.
KTF로 번호이동을 해서 집앞 대리점에서 140,000원 하는 것을 온 인터넷을 뒤져 단 1원에!
엠피쓰리, 디카, 전자사전까지 갖춘 앙징맞은 놈을 낼 받게 되었다.
하여 핸드폰 분실한 쓰라림에 약간 위로를 받으며 희희낙낙하던 것도 잠시...
인터넷 서치 하느라 반나절 이상을 보내고 마우스질 하느라 어깨도 뻐근하고,
어제 악몽을 꾼 데다 컨디션도 안좋았던 탓도 있지만, 결국은 작정한 일도 못하고, 돌 지난 아이와 다섯살 난 딸 둘을 대동하고 방문을 한다고 벼르던 친구까지 만류하고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 셈이 되었으니 뭐 했나 싶기도 하다.
대리점에서 사면 당장 개통을 할 수 있는데다 그런 수고를 안했을 것인데.
가난하면 부지런해야 하는 세상, 그래도 가난해도 부지런하면 이런 보상이 있는 인터넷 세상이 나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부지런하면 가난하지 않게 된다고 배웠지 않았나.....

어제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났었다.
갑자기 급하게 보자 하던 친구는, 만나자마자 팔짱을 꼬옥 끼고 애틋한 눈길을 날리더니 곧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와 호주로 소위 조기유학길에 오른다고 했다.
가기 전에 꼭 보고 싶었다고..
일산에 이사오고 나니 서울 시내로 나서기가 괜히 쉽지 않아져 한꺼번에 세 개 일정을 잡아논 게 미안해지고 있던 내가, 기어이 병원까지 동행해준 친구에게, 병원 같이 와준 게 니가 처음이야, 라고 고마움을 전했더니, 친구가 잡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며 말한다.  

"니가 혼자 뭐든 잘 하니까 혼자 하게 되는 거야. 그게 문제라니까."

어릴 적엔 큰 딸 사랑이 유독해서 공작숙제 같은 게 있으면 밤새워 만들어주던 아버지 덕분에 늘 1등을 했다던, 몸이 약하다고 애지중지하고 도무지 혼자 설 기회를 주지 않았던 가족들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푸념하던 친구였다. 그리고 또 그렇게 애지중지 해주는 사람 좋은 남편을 만나 딸 아이 하나를 키워오던 그 친구에겐 이번 호주행은 대단한 결심이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쉽지만은 않을 그 여행에서 아무쪼록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챙겨올 수 있는 3년이 되기를, 마음을 모아 간절히 바란다.

어쨌거나 그에 대한 내 응수는 단호하게 이랬다.

"아냐, 혼자 해야되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혼자 잘 하게 되는 거지. 그게 먼저야"
(용불용설? 그러나 사실 이렇게 말할 주제는 못되는 걸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맨날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산만하고 게으르기 그지 없는 난, 혼자 살면서 잘 해야할 것들을 정말 잘 하지 못하고 산다. - 지금도 시디플레이가 안되는 오디오에 붙일 디비디 플레이어를 주문해서 올려놓고 귀찮아져 누가 좀 해줬으면 하고 있다. -,.-)

휴대폰 때문에 골치 아팠기에, 필요하면 알아서 사서 갖다 주는 남편 탓에 갖고 있는 핸드폰의 이동통신사가 뭔지도 모른다는 친구가, 철없는 시절 그랬듯이 잠깐 부럽기도 하였으나...

헤어지면서 친구가 건네준 쪽지에 마음이 그만 뭉클해졌다.
먼저 와 기다리면서 썼다는 편지엔, 내 이름이 늘 그립단 말이,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녀를 닮은 앙징맞은 글씨로 빼곡한 편지를 읽으며 걷다가, 그렇게 나누는 마음만으로도 한 세상 따뜻하게 살 줄 알았던 이십몇 년 전 그  세월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