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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감자와 컬리플라워

kalos250 2006. 4. 15. 22:46
감자와 컬리플라워

알루는 감자입니다. 고비는 컬리플라워라는 야채이지요. 인도 사람들의 주식이 쌀밥과 커리라는 건 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 커리에 가장 흔하게 들어가는 재료가 바로 알루와 고비입니다. 그러니까 알루와 고비는 이를테면 뭐 실과 바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캘커타 마더 테레사의 집에 알루와 고비가 있었습니다. 행려병자들을 위해 수녀님들이 만드시는 야채 커리에 들어 있는 그 감자와 컬리플라워처럼 항상 붙어 있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알루는 중증 간질에 전신마비까지 겹쳐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였고, 고비는 한쪽 팔과 두 다리가 망가져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만 하는 환자였습니다. 알루와 고비는 물론 그들의 본명이 아닙니다. 알루의 본명은 랄루였습니다. 고비의 본명은 산자이였구요. 그들이 알루와 고비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항상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커리 속의 감자와 컬리플라워처럼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마더 테레사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그해 겨울 네 번째 캘커타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나이도 모릅니다. 20대의 나이로 짐작할 뿐입니다. 확실한 건 그 둘이 따로따로 마더 테레사의 집으로 실려왔으리라는 것입니다. 어쩌다 그 둘이 그렇게 떼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랄루가 누워 있는 자리에는 언제나 산자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랄루의 머리 밑에 베게가 놓여 있는 때가 많았지만, 산자이의 무릎에 랄루의 머리가 놓여 있는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

자원봉사자들의 일손이 많을 때는 봉사자들이 랄루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그렇지 못한 날이면, 랄루의 입에 밥을 떠넣는 일은 산자이의 몫이었습니다. 성한 한쪽 팔로 자기 한 입 먹고 랄루 한 입 먹이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간질 발작으로 랄루가 괴로워할 때, 산자이는 성한 한쪽 팔로 랄루의 가슴을 쓰다듬었습니다. 랄루, 랄루, 랄루..... 노래하듯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그런 랄루와 산자이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글쎄요, 사람의 높낮이를 꼭 부와 명예, 건강 따위의 기준으로 잰다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니까 그들을 세상의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러본 것뿐입니다. 하여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랄루와 산자이의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의 우정보다 적어도 천 배쯤은 더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은 오로지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
(출처 : 조병준 블러그 http://blog.naver.com/joon6078 )


때로 어떤 유쾌하지 않은 이유들로 인해 내 삶의 조건들이 지극히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물론 사지육신 멀쩡한 나의 조건들이 이들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하고 호사스런 것이겠지만) 이런 시점에서, 이들이 그려내는 풍경은 더욱 더없이 아름답고 귀하게 보인다.
서로의 "낮은" 삶의 조건들이 그 아름다운 관계의 기반이 되는 일.
오늘 같은 날, 나도 그들처럼 알루이거나 고비가 되어 서로의 절대적인 삶의 조건이 되는 그런 관계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