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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다시 경포에서>

kalos250 2006. 4. 25. 00:09
안개비 속에
뿌옇게 흐린
경포 호수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고여 거울이 되지 못하는 물은
썩게 마련이라고
출렁이는 마음속
뿌연 거울을 들여다보며
새삼 생각한다
불혹이란
자기 몫의 외로움을 겸허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무리를 잃고
뻘흙 위 갈숲에서
병을 다스리는 새여
네가 물을 차고 솟구치는 날
숭어가 고니로 변해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되리라

최두석, <다시 경포에서>


한참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엔 우연한 만남들이 종종 있었다.
뱅뱅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서로 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지났다 한참 있다 그가 누구였는지 생각이 났던 일도 있고(아마 그도 그랬던 듯), 버스 안 창문 너머로 아는 얼굴을 발견한 일도 몇 번 있었으며, 교보문고 부근이나 종로 3가 전철역은 아는 얼굴을 가장 많이 만나던 장소여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별스럽지도 않을 정도였다.
또, 사진을 찍던 시절엔 충무로가 있었다. 슬라이드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두시간여를 마음 졸이며 어슬렁 거리던 때, 아는 얼굴을 만나면 참 반가웠었다.
그러면서, 나이 먹을 수록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이런 일도 많아질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일단 내가 아는 이들이 거리를 돌아다닐 일이 먼저 적어졌고, 이제는 남들보다 한참 나이를 늦게 사는 내가 거리를 나서는 일이 뜸하게 된 지가 꽤 된 것이다.

대신 컴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일이 많게 되면서, 그러한 일이 웹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도 그런 경우다.
손목이 약한 내게 맞는 키보드를 네이버에게 물어보려다 당도한 이의 블러그(그도 예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맘에 짜안하게 다가오는 이름을 보았고 그 이름을 클릭해서 당도한 그녀의 블러그가, 그녀가 참 예뻐 보여서 종종 드나들던 참이었다.
그러다 오늘 그녀의 블러그에서 위의 시를 적어놓은 글을 보았고, 그 밑에 적혀있던 메모를 읽었다.
2005년 9월에 그녀에게 이 시를 보냈다는 그 선배란 사람의 예사롭지 않게 긴 필명과 아이디는 내가 아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사실 친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거리를 두고 있던 그 선배.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이런 것이다. 그의 아이디에서도 볼 수 있듯 스스로를 자꾸 낮추는 그의 삶은 실제론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 있는 것이어서... 보잘 것 없이 약하고 그래서 때로 비굴해지기도 하면서 엄살부리고 살아가는 인생들의 그 복잡한 인생사를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친절하긴 힘들것 같다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선입견이기는 해도.. 내가 쫌 비굴한 인생이어서 그런지 좀 가까워지기는 힘든 사람이었는데, 이런 우연으로 문득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가을이었군. 그 때 왜 이 시를 보냈을까...

내 보기엔 절대 썩는 물은 될 수 없는 인간이건만, 불혹의 나이도 아니면서 더 겸허하게 외로움을 견뎌 어디까지 날아오르려 한단 말이냐..
(헉 이 삐닥함이라니..  미안하고, 반성할 일이로다 -,.- 내가 무슨 맘으로 이러는지가 분명하니 혹시 이걸 보고 누구인지 알게 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에게 일르지는 마시길.  )

아무래도 감기의 공격에 지쳐 마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것 같으니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감기약을 하나 더 먹고 잘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