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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

kalos250 2006. 1. 20. 00:29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


여자 홀로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 저려오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비행기 창가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여자도 역시 아름답다.

바닷가를 혼자 거닐며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의 모습도 그림처럼 멋지다.

이런 연출을 기대하면서

여자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모든 여자의 영원한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둘이 하는 여행과는 달리

혼자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충동이 더 크다.

여자는 고독한 모습으로 존재할 때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자의 깊은 가슴 속에는 항상 메워지지 않는 빈 자리가 있다.

부모도 형제도 사랑하는 사람도 메워줄 수 없는 자리……

가을이나 겨울 같은 어떤 특정한 계절이 아니라

모든 계절과 계절 사이, 마음의 울렁임을 따라

영원히 혼자 떠날 수 있는 여행을 꿈꾸면서 산다.

그러나 늘 가방을 꾸리기만 한다.

태어나서 엄마의 감시를 받으면서 요조숙녀로 자라나

겨우 어른이 되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었구나 했을 때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 뒤 세월이 좀 지나면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은 더 작은 눈으로 짠 그물이 되어서 여자를 조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강하게 조여드는

절박의 끈으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묶어놓고 만다.

잠시도 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나중엔 못 나가는 것인지 안 나가는 것인지

그 구분마저 애매하게 된다.

결국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 날

여자는 모든 그물에서 해방된다.

그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이미 오십이 가까워진 나이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땐 여자가 홀로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도

아름답게도, 매력적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청승맞고 초라해 보일 뿐.

아무도 그 여자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끌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나이에야

겨우 모든 그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아무데에도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무슨 옷을 입고 나서야 남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백화점에도, 이름난 디자이너의 옷가게에도 몸에 맞는 옷은 없다.

젊고 아름다워 보이는 옷을 집어보지만

그런 디자인의 옷은 몸에 맞질 않는다.

좋은 옷 입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제부터야말로 여자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놓친 시간이 아무리 길고 아깝다 해도

그건 생각하지 말기로 한다.

잊어버리기로 한다.

지워버리기로 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가냘픈 허리에 기다란 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칼을 되는 대로 틀어 올리고 기차에서 내린다.

황야를 달려온 속도 없는 기차에서 내리면

그 여자는 새롭고 낯선 아프리카의 공기를

몸으로 느끼며 주위를 살핀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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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도 소개됐던 황안나라는 멋진 할머니의 책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을 서점에
서 읽다가 특히 맨 앞에 있는 이 시가 맘에 들기도 해서 엄마한테도 사드리고 싶어졌어. 아니나 다를까 책 표지싸개에는 '이 책을 읽은 딸들은 누구나 어머니께 이 책을 선물했습니다'라고 써있더군. yahoo에 있다는 블로그에도 당장 찾아가서 즐겨찾기 등록해놨어.

그 시를 보고 언니와 이 공간을 떠올린 건 왠지, 공감해줄 것 같아서였는데 맞우?^^(내가 이 시 일일이 다 쳤다는 거 아니우). 조로한 듯한 날 보고 조금은 딱하게 웃을 모습이 생각나는군.

우리가 아직 혼자인 건, 오십쯤이 아니라 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쉽게 찾기 위해설까.

내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신을 쉽게 놓아두기 위해설까.

독사진 찍기가 특히 불편해 예전에 혼자 여행은 재미없다고 느꼈던 게 생각났지. 그런데, 요새 디카는 얼마든지 혼자 찍을 수도 있잖우.

그래, 가끔은 혼자 훌쩍 떠나볼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