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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을 위하여

kalos250 2006. 4. 1. 14:16
... 떠나라는 신호가 왔다.

몸이 말한다. 몸 안이 온통 독으로 가득차 있다고.
물을 갈아먹고 설사를 해서 그 독을 내보내야 한다고.
뻘뻘 땀을 흘려 모공을 꽉 막아버린 개기름을 씻어버려야 한다고.

오래 전 언젠가도 이랬다.
내 안에 오만과 탐욕과 집착과 미움의 에너지가
만수위를 넘어 차올랐었다.
그때 어떤 신호가 왔었다.
나는 그 신호를 따라서 집을 떠났다.
길을 걸으며 그 나쁜 에너지를 웬만큼 방류할 수 있었다.
풍경이, 사람들이 내게 건네 준 선한 에너지를 몸 안에 채워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집을 떠나지 못했다.
언제든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지난 6년, 길 떠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시간은
또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
이 땅의 몇 구석들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친구들에게 위로받으며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약발이 다한 모양이다.
아주 멀리 떠나지 않으면 안 될 모양이다.


가능하면 빨리 짐을 꾸리려 한다.
물론 떠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있다.
어쩌면 당분간 블로그질에도 뜸해야 할지도 모른다.
푸른 신호등의 화살표들이 다 꺼질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그러면 길을 건너지 못한다.
...

출처  
http://blog.naver.com/joon6078/30003133467



조병준.
멋진 사람이다. 떠남의 이유에 대해 이렇듯 절절하고 멋진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사람.
나름대로의 절실한 이유들을 가지고 떠남을 계획하던 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출발이 지체되자  고작 서울을 조금 벗어나 일산에 자리를 잡았다.
먼 거기로의 떠남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난 당분간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그제밤엔 빡세게 인라인을 타다가 어제 하루는 꼼짝 못하고 몸살을 앓았다.
영리하지 몸한 탓인 걸 알지만, 그 몸살이 내 몸안의 독소를 배출해내는 과정인 것만 같아 나쁘지 않다.


생각이 막힐 때에는 걸어라.
생각이 너무 많아도 걸어라.
나쁜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걸어라, 계속.


설치 미술가 최정화가 했다는 이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 거린다.
계속 걷고, 또 걸으면서... 마음과 폐와 근육을 단련시키면서 떠남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