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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kalos250 2006. 3. 22. 01:06
철새들은 강이나 산맥 같은 거대한 이정표, 태양과 별의 위치, 기압의 변화, 바람의 방향과 냄새, 심지어는 바다의 물결이 내는 주파수 소리 등을 따라 방향을 잡는데... 인간의 몸 안에도 그런 낭만적인 나침반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교활한 갈림길이나 절망의 늪 따위에서 깜깜히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진정 가고픈 나라로 훌쩍, 몽땅 날아오를 수 있을 텐데...

이응준 소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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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느라 끄집어냈던 낡은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메모.
낭만적이진 않지만, 인간의 몸 안에도 불완전하나마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나침반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나침반의 존재나 불완전함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자성 자체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 그 필사적인 방향잡기도 효력을 상실한다는 데 있을 듯.  
음, 오래 전엔 책을 읽다 이렇게 메모도 하고 그랬는데... 이런 짓을 아예 안하게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