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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생각하다

kalos250 2006. 2. 1. 16:15
땅끝 마을에 가 본 적이 있다.
땅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을까. 그 때 기억은 희한하게도 꿈결처럼 아스라하다.
지독하게 더운 날씨였다.
강렬한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야트막한 해안의 음식점들은
영화 가위손에 나오는 집들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키보드에 푹 빠져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디오나 자동차나 그런 것들이 아니고 키보드인 것은, 넉넉치 못한 살림에서 끝까지 가볼 수 있는 것이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를 잘 모르고 키보드의 매력도 전혀 모르지만, 그것이 세속적으로 그를 윤택하게 해주거나 인정받지도 못하는 종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을 갈구하는 열정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끝.

그러니까 끝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싯귀절처럼 "후욱 비린내나는 끝의 비루"를 떠올리는 땅끝, 벼랑끝, 같은 것이 있을 것이고,
키보드의 끝, 목표의 끝, 정상 같은 것이 있을 것이고,
이별의 끝, 인생의 끝 같은 것들...

대체로 자잘한 좌절들도 많이 겪고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것을 삶의 지혜로 체득해온 내게는 그 어떤 쪽도 별로 친해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그 끝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 그 끝이 지리산 정상처럼 숨가쁘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한갖 비루일지라도 그곳에까지 도달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 끝에서 다시 일어서든 주저앉아 버리든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