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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그리고 제주도의 회색빛 바다
kalos250
2005. 7. 28. 03:23
모처럼 일찍 잠드는 것에 성공했다고, 꿈에서조차 그 상황을 신나하고 있을 시점에 쿵쾅거리는 천둥소리 때문에 잠이 깨버려 대략 낭패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나이 들어도 이렇게 번개치고 천둥치는 시츄에이션은
세상사 무서울 거 많이 없는 여인네를 사운드 오브 뮤직의 꼬마로 만들어버립니다.
누군가 따뜻한 손으로 보듬어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줬으면 하는...
한시간쯤 다시 잠을 시도하다 결국 다시 모니터앞에 앉아 한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자 문득 드는 생각.
이 인터넷 문화가 솔로들의 생활을 든든히 지탱해주고 있다는... -.-;
오늘 낮에는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는데,
거기서 다른 파트의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여리여리한 몸매에 자기주장이 확고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그녀는
티피를 끝내고 둘이 먼저 나오자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이것저것을 묻고 얘기합니다.
내가 나이가 좀 많아요.. 하면서 나이를 밝히는데
실상은 나보다 두 살 아래.
일을 하면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오랫만에 첨이라고 팔짝 팔짝 좋아하는 그녀에게,
나의 나이는 오늘 또 용기와 기쁨을 주었던 듯 합니다.
비슷한 나이 외에, 주거형태라든가 일에 대한 비슷한 생각들이 또 반가움이 되었겠지요.
그리고, "훨씬 어리게 봤어요. 결이 고와 보여서" 라는 그녀의 말은 내게 즐거움을 주더군요.
결이 곱다라는 말.. 내가 아주 아주 이쁜 사람을 만났을 때, 아껴서 사용하는 말이었으므로.. 흐흐
내일은 그녀의 충고대로 손목과 팔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아령을 사러 가야겠습니다.
내게 솔로냐, 혹 돌싱(돌아온 싱글)이냐고 묻던 솔로의 그녀는 이 무서운 밤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동거하던 동생이 분가를 한 후에 남편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동거인"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는 그녀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며, "동거인 꼭 필요하지요. 나야 혼자 산지가 오래 되어서 이게 익숙하지만"이라고 당당히 말한 나도 무서워 잠자리에 못들고 있는데 말이지요.
이런 잡담을 늘어놓고 있는데 빗소리는 점점 강해지네요. 다행히 천둥 번개는 잦아진 듯 합니다. 이제 궁상맞은 독신자의 넋두리를 끝내고 다시 잠을 청해봐야겠습니다.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숙소에서 내내 보내버렸던 "제주도의 -푸르지 않은- 회색빛 밤들"이 문득 생각나네요. 눈앞에서 수십미터로 솟구쳐 오르던 거대한 파도와 그 파란 바닷빛을 끝내 보지 못하고 비행기에 올랐던 안타까움도.
그 화사한 제주도의 원색빛을 하나도 안보여주어 너무나 원망스러웠던 그 때 그 제주도 사진입니다. 꼭 흑백사진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