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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테에- 브레송, <철나의 거장展>을 보다.

kalos250 2005. 6. 13. 03:06


사진의 성전으로 불리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미학을 만들어낸, 전설적인 사진의 거장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들을 직접 보는 것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며, 작가 의도나 피사체, 그리고 그 주변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고, 구도와 형태의 예술적 감각이 완벽하게 구성되는 아주 짧은 순간을 의미한다..." 는 결정적 순간의 사진미학의 원리를 전개하고 있는 사진들은, 아쉽게 잠재워버렸던, 한 때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던 사진에 대한 열망을 잠깐 잠깐 떠올리게도 하였다.
(내 사진에 호감을 보였던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사진가에게 "어떻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 라고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은 "10년동안 탕진할 수 있는 가산이 있으면 된다" 는 것이었다.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기본조건의 하나는 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고,.. 어쨌거나 이후로 나는 점차 사진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게 되었다 브레송 역시 커다란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

그런데 피카소, 마티스, 샤갈, 뒤샹, 샤르트르, 수잔 손탁, 존 버거, 자코메티 등 20세기의 세계사적 인물들의 사진을 보고 나와서는, 그들을 모두 만나 "긴밀한 상호과정의 결과로서 본질적 공감을 공유" 한 것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괜히 딴지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피사체가 된 인물들도 모두 그에 동의를 했을까 라는.
사람에 대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지난 주 지인들을 만나 즐겁게 웃고 떠들고 하는 자리에게 분위기에 취해 조금 많은 말을 늘어놓았다가, "니가 원래 **하자나" 라는 말을 세 가지 쯤 들었는데, 재미있는 건 세가지가 모두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는 것이었고 이제까지 들었던 나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와는 상반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들을 때는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 편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들으로 결정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하는.  

몇 년 전 민족음악연구회에서 마련한 어떤 특이한 음악회에서 <일상을 찾아서> 라는 주제로 들려주었던 이야기 한 대목이 생각났다. 누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며 뭘 먹고 싶어 라고 물었을 때 날씨도 쓸쓸하고 하여 "수제비" 라고 대답을 했는데, 이후로 그를 만날 때마다 너 수제비 좋아하지? 하며 수제비를 사주어 그렇게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수제비를 줄곧 먹게 된다는 것.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오징어를 먹고 있을 때, 먹지 않고 쌓여가는 오징어 껍질들을 보다 우연히 그걸 먹었더니 오징어 껍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찍히어 오징어 껍질 한무더기를 특별히 선물 받게 된 이야기.. 그런 에피소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내가 이사람과 저사람에게서 너무나 다른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도 허다하고, 때로 내가 수제비나 오징어 껍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내 존재에 대한 결정을 수정하는 일은 퍽이나 번거롭고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친숙한, 나를 설명해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존재는 때로 아니 자주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제목과 다르게 사진의 감동과는 상관없이 얘기가 흘러버렸으나,
브레송의 사진이 거장의 사진답게 깊이 있는 미학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사실이고.
사람의 본질에 대해 결정적 판단을 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햇볕이 좋았던 오늘, 전시회장 앞에서 친구와 찍었던 사진을 주욱 돌려본다.
자신의 사진술이 낫다고 주장하며 서로의 모습을 찍어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 얼마나 솔직한 매체인가가 나의 적나라한 얼굴로 확인된다.
사람이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는지, 시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매체인지 -.-
사실 늘 카메라 뒤에, 사진을 찍는 위치에 있게 되는 나에게는 내 사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 얼굴은 잘 보지 못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사진기술이 훨 낫다고 주장하며 새로산 팬케익 렌즈가 훌륭하다 감탄을 아끼지 않는 친구의 말도 더욱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는 정말로 나이들어가는 일에 초연해질 때가 된 것이다.  -.-;;  인정하고 어여삐 보아줘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