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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두 가지 예술계에 대한 짧은 생각.

kalos250 2003. 1. 6. 00:23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군이 있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세상에는 두 가지 예술계가 있다. 보통 이상으로 고귀하고 우아하며 탐미적인 풍요로움의 예술, 그리고 보통 이하로 비천하며 번뇌하고 갈구하는 고통의 예술. 감상자들은 풍요로움의 예술을 통해서는 귀족적인 상류사회에 대한 갈망을 간접체험하고 고통의 예술을 통해서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다. .... (중략)
문화선진국에 고귀한 신분의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식민지에서 비천한 신분의 궁핍한 가정에서 자라난 예술가가 있다. 이들이 창조해낸 작품들의 용법, 효능, 효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서 예술이 필요하고 다른 쪽에서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술이 필요하다. 한편은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이 있고 한편은 ‘너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예술’이 있다. 감상자들은 자신의 처지와 그날의 기분과 형편에 따라서 적절한 것을 수시로 취하면 된다. 예술이란 다양한 종류의 가상현실이다......   "

황신혜 밴드의 김형태가 쓴 글을 읽다보니, 어제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다시  읽었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겹쳐진다.
"시대의 모순을 비켜가 화려하게 각광받는, 봉건적 미덕의 정점을 누리고 간 삶"에서 나온 것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이었다면, 봉건적 질곡의 시대를 사는 아픔을 그대로  껴안고 살았던 난설헌 허초희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너의 슬픔을 위로하는 예술"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 삶속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효능이 있는 예술은 대체로 전자보다 후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은 따분할 때보다 절망을 극복해야할 일이 더 많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