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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신 하루

kalos250 2005. 4. 11. 02:18
누구나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말도 아닌 글도 아닌 하물며 생각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미처 감추지 못한 밭은 기침같은 것들을 무방비 상태로 토해내고 싶은.......

이 곳은 내가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과 그 삶의 모습에 함께 공감하고 울고 웃고 우울해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소중한 곳 중의 하나다. 단지 그 변치 않는 믿음 하나로 두서없이 써내려질 것이다. 나의 글은......


하나.

아무런 정신없이 멍하니 밤을 새운 탓일까 온 종일 머리가 무거웠다. 아직도 귓전에선 멈추지 않고 흐느끼던 빗소리가 이명으로 맴돌고 있다. 잠시 후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건인 즉 함께 영화를 보자는 거다. 얼마의 시간 동안 가부간의 대답을 못한 채 멍하니 있었던 듯 하다. 기다림에 지쳤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결정을 독촉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조금쯤은 튕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새침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암튼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영화보기에 동의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후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혜화동을 향해 출발했다.

비온 후의 청명함 때문일까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바람은 신선했으며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생기로 가득하다. 길가에 서 있던 대책없이 흐드러진 목련을 보며 또 한 동안 멍하니......내가 늦장을 부린 탓에 친구는 결국 마지막회의 표를 예매해야 했고, 우리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식사와 산책으로 떼워야 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으며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모처럼의 산책은 평화로웠다. 친구는 얼마 전 부모님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 슈나우저라던가. 내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라 명칭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분개하던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강아지는 이름과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하고 있었으며, 동네 여기저기에 강아지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어 뿌렸음에도 찾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강아지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욕심을 부려 가져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는 절도가 아니라 유괴라는 것이 분개한 친구의 일축이었다.

"사람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 혹시 그런 경험 해본적 있어?"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나름대로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경험은 있는 것 같은데, 정말로 그런건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거든 암튼 내 딴엔 그래야 한다고 머리로는 판단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마음의 무방비 상태를 틈탄 그리움이 심지어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까지 들게 해. 가슴에 묻는 다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경지라고 생각 돼. 이건 정말 솔직한 말이었는데......너의 질문에 대답이 됐니?"

"솔직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맴돌아서 말하니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

친구의 말이 맞다.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둘.

"아무도 모른다" 친구가 예매한 영화의 제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의 소식을 접하고 내심 보고싶어서 벼르고 있었으니 이심전심이었을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니 영화에 대한 소개는 팜플렛의 내용으로 대신 하기로 하겠다.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12살 소년 아키라가 엄마와 이사를 온다. 집주인에게는 단 두 식구인 척하기 위해 세 명의 동생은 남몰래 숨어서 들어온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아빠가 모두 다를 뿐더러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다. 또한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키라를 제외한 세 아이들은 집밖에 나가선 안되고 아파트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 하지만 모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네 남매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모험이 시작된다.>

굳이 내가 더 이상의 내용을 말 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상황들로 인해 일어날 사건들이 충분히 유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실제의 내용보다 더 참신한 상상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단순한 탓일까 2시간30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내 몸 어디에 그다지도 많은 수분이 숨어 있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니 놀라운 구석이 있다. 좀 심하게 훌쩍거렸는지 옆자리의 친구는 감기냐고까지 물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나는 거하게 먹은 저녁을 모두 게워내었다. 화장실에서 내가 토해낸 것이 토물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팜플렛에 소개된 내용이 아니기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건, 언제나  냉혹한 환경 앞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것은 가장 사랑스럽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셋.

지난 밤 9시경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즉시 안산으로 달려오라는 거다.

아무래도 이제는 내 구차한 가족사의 한 토막을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내게는 대개의 가정의 친 형제보다 살가운 사촌형들이 무려 넷이나 있고 사촌 누이가 하나 있다. 이유인 즉슨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할머님과 피난을 내려오던 숙부들이 더러는 죽거나 더러는 헤어져서 지금의 큰 아버님과 아버님 두 분만 남은 까닭이다. 두분의 우애는 어린 눈에도 참 대단하게만 여겨졌었다. 각설하고 사촌형들 중 큰 형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막내형을 제외하면 모두 나와는 많은 터울이 지는데 유독 큰 형만을 형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다른 형들과는 달리 접촉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내게 있어 큰 형님은 엄격함과 냉정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탓인지 항상 무거운 표정으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농사를 짓던 큰 댁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중학교를 마치고 대구의 소화기 공장을 다니며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던 큰 형님. 밑의 형님들이 모두 대학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큰 형님의 희생과 뒷바라지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제는 오십줄에 접어들어 다행히 안산에 작은 소화기 도매상을 꾸려나가고 있는 큰 형님에게는 내게는 조카가 되는 아이가 둘 있다.

그 중 큰 아이의 이름이 성희다. 올해로 열 여덟이 된다. 흔히 말하는 꽃다운 나이다. 지난 밤 내가 받은 전화의 내용은 그 아이의 부고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사망원인은 감기다.

내가 큰 형님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항상 그 분을 따라다니는 어이없는 슬픔에 있다. 성희는 다운증후군이었다. 그것도 상태가 아주 심해 지난 설에도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성희는 울고 웃는 원초적인 표현밖에는 아무것도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런 성희가 세상을 떴다. 감기로..... 울먹이던 형수는 이렇게 말했다. 3일 전부터 감기를 앓았다고 그래서 찾아갔던 병원에서는 아이가 너무도 허약해 자칫 과실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주사도 놓아주지 않고 먹이면 토해내는 약만을 처방해 주었다고 토요일 점심때 쯤 아이가 괴로워해서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성희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다리지도 못하고......그렇게 갔다.

새벽을 지키던 영안실에서 언제나 바위같던 큰 형님의 오열을 보았다. 감기는 견디고 넘어갈 수 있다던 병원측의 말에 평상시처럼 일터로 나갔다가 아무런 방도도 취해보지 못하고 먼저 보냈다고......차라리 한 동안 앓았다면 이것 저것 해 보았을 텐데 속수무책이었다고.....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큰 형님의 정신나간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차마 울 수도 없었다.


세상은 언제나 가장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에게 냉혹하다는 것, 그리고 슬픔과 절망은 어둡고 칙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상시에 감흥없이 보아오던 것들을 눈부시게 만든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새벽에 다시 안산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