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os250's before
휴, 가족이란.... 본문
"가족이 무서운 건 내가 세상에서 너를 가장 잘 안다는 전제하에 아주 깊숙한 뼛속까지 파고드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거고, 더 무서운 건 외부 사람은 그 진행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그렇게 신화화하고 표준화해서 팔아먹고 있는 가족애나 모성애의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면 왜 우리집은, 내 형제는, 내 부모는 딴 사람과 달리 날 사랑하지 않지, 난 왜 이렇게 이상하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렇구나 하고 굳세게 이겨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당위라는 것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분리해서 제대로 한번 보자는 것이다. 인정할 걸 인정해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수연 (4인용 식탁의 감독), 씨네21
한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두 아이를 던지고 한 아이를 안고 투신자살한 사건을 들었을 때의 섬뜩함이란!
이것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다 생각하며, 살려달라 뿌리치는 아이들을 던져버릴 때의 그 어머니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아끼는 후배가 맘고생이 많다는 얘길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혼을 반대하는 그의 어머니의 태도가 무척이나 강압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그의 어머니의 반대는 무척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그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아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이미지가 아무리 망가져도 내 아들의 행복을 위해선 감수한다."는 숭고한 모성애가 그녀를 비장하게 혹은 그토록 무모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끔찍한 아들이 그렇게도 사랑한다는 여자를 어찌 그리 대할 수 있으며, 그녀 뿐만 아니라 그 아들에게까지 "뼛속까지 파고드는 상처"를 주는 일을 감행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지켜낼 수 있는 아들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그런 무모함이 자식을 벼랑끝으로 모는 것일 수 있음을...
" 난 나중에 내 아들이 남자랑 결혼한대도 인정해줄거야" 라고 얘기했던 친구가 있다. 친구가 막상 그런 상황에서 그 생각을 지켜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모르는 일이긴 하나, 최소한 이런 류의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런 쿨함 때문에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는 사회에선 이런 일이 꽤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때, 그 가여운 연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를 묻는 건, 갈등 중인 부부가 이혼해야할지 말지를 시청자 투표로 묻는 티비 프로그램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들이 뼛속에 혹은 가슴 속에 상처를 묻어버리고 다른 길을 가게 될지, 혹은 다른 사람, 다른 가치로 대체될 수 없는 서로의 절대적인 존재 때문에 용감한 선택을 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염려하는 다른 후배에게, "아주 먼 곳으로 같이 도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가 견딜 수 있다면 헤어지면 좋겠어" 라고 말하곤 나는 곧 뜨끔해진다.
좀 더 세상을 살았다는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녀들보다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더 안다는 자만 때문이거나, 영원하거나 순수한 가치들에 대한 믿음이 그들보다 적은 때문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서글프게 머릿속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띵...
어쨌거나, 예쁜 후배 그녀, 기운 잃지 말고 씩씩하게 잘 헤쳐가기를..
상처란 스스로 그것을 상처로 인정하는이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라니,
힘들더라도 담대하게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갈 수 있기를, 부디....
한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두 아이를 던지고 한 아이를 안고 투신자살한 사건을 들었을 때의 섬뜩함이란!
이것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다 생각하며, 살려달라 뿌리치는 아이들을 던져버릴 때의 그 어머니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아끼는 후배가 맘고생이 많다는 얘길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혼을 반대하는 그의 어머니의 태도가 무척이나 강압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그의 어머니의 반대는 무척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그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아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이미지가 아무리 망가져도 내 아들의 행복을 위해선 감수한다."는 숭고한 모성애가 그녀를 비장하게 혹은 그토록 무모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끔찍한 아들이 그렇게도 사랑한다는 여자를 어찌 그리 대할 수 있으며, 그녀 뿐만 아니라 그 아들에게까지 "뼛속까지 파고드는 상처"를 주는 일을 감행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지켜낼 수 있는 아들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그런 무모함이 자식을 벼랑끝으로 모는 것일 수 있음을...
" 난 나중에 내 아들이 남자랑 결혼한대도 인정해줄거야" 라고 얘기했던 친구가 있다. 친구가 막상 그런 상황에서 그 생각을 지켜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모르는 일이긴 하나, 최소한 이런 류의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런 쿨함 때문에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는 사회에선 이런 일이 꽤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때, 그 가여운 연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를 묻는 건, 갈등 중인 부부가 이혼해야할지 말지를 시청자 투표로 묻는 티비 프로그램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들이 뼛속에 혹은 가슴 속에 상처를 묻어버리고 다른 길을 가게 될지, 혹은 다른 사람, 다른 가치로 대체될 수 없는 서로의 절대적인 존재 때문에 용감한 선택을 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염려하는 다른 후배에게, "아주 먼 곳으로 같이 도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가 견딜 수 있다면 헤어지면 좋겠어" 라고 말하곤 나는 곧 뜨끔해진다.
좀 더 세상을 살았다는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녀들보다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더 안다는 자만 때문이거나, 영원하거나 순수한 가치들에 대한 믿음이 그들보다 적은 때문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서글프게 머릿속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띵...
어쨌거나, 예쁜 후배 그녀, 기운 잃지 말고 씩씩하게 잘 헤쳐가기를..
상처란 스스로 그것을 상처로 인정하는이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라니,
힘들더라도 담대하게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갈 수 있기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