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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축구일 뿐, 고래가 그랬어

kalos250 2006. 6. 18. 00:49


축구는 축구일뿐        
출처 : 김규항 블로그 http://www.gyuhang.net/
(조중사가 고래에 쓴 글. 실은 내가 초고를 썼다가 핀잔 먹고 조중사가 거의 새로 쓴 것.)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월드컵은 축구 딱 한 종목만 하는 행사지만 올림픽보다 더 인기 있는 스포츠 행사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에 열리면 온 세상이 들썩거린다. 우리나라는 지난번 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올랐기 때문에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경기가 열리는 날, 거리는 온통 붉은 색 셔츠로 차고 넘친다. 수백만 명이 길거리에서 응원하다가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밤을 새우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요즘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개 운동선수다. 야구 좋아하는 미국 사람은 거의 다 박찬호를 안다. 영국에서 이영표와 박지성은 꽤 유명한 선수다. 독일인은 가장 훌륭한 외국인 선수로 차붐(차범근)을 기억한다. 요즘 미국프로골프리그(LPGA) 우승자의 절반은 한국 여성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은 그들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치켜세우며 그들의 승리와 패배에 함께 웃고 운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잠깐. 왜 축구대표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걸까? 월드컵 4강이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 4강이 되는 걸까? 박찬호의 승리가 곧 한국인의 승리일까? 박지성이 존경받는 스타가 되면 한국이란 나라까지 우러러볼까?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드로그바와 에시앙, 스페인 라 리가 바르셀로나의 에토를 다 안다. 그들은 세계 최고로 존경받는 축구선수지만 그들이 태어난 아프리카 나라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을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 나라 국민들이 기아와 내전으로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고 말할 거다. 고래 동무들!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다. 한국이 이기든 지든, 한국과 한국인에겐 별로 달라질 게 없다. 축구는 축구일 뿐, 그냥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자.



* 언니네랑 인라인을 타러 갔다가 전화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언니네 교회 누군가가 혼자 농장에서 토고전을 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축구경기를 혼자 보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심장이 약하거나 혈압이 높으신 분들 조심하셔야~)
축구는 이렇게 생명마저 위협할 정도로!그 자체로 정말 큰 에너지를 가진 파워풀한 경기인 것을. 굳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쉽게 그 열광에 빠져들 수 있는.


* 여기서 "고래"는 <고래가 그랬어> 라는 어린이 잡지다.
어린이 잡지, 라고는 하나 어른들이 보기에도 정말 훌륭한 내용이 빼곡한 괜찮은 잡지다. 물론 아이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만화, 캐릭터, 딱지 접기, 등의 아기자기한 장치들도 곁들여 재밌고 정성스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잡지임에는 틀림없다.
이 잡지를 처음 보고 조카에게 구독시켜주고 싶었으나 아직 저지르지 못했다. 다소 비판적인 내용 때문인데, 언니 역시 아이들에게 "아직은" 세상에 어둡거나 부조리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삶에 있어서의 좌절이나 실패, 같은 것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에서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씩 그런 언니에게 "세상이 험하고 인생 또한 그러한데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지" 라고 놀리긴 하지만, 아직은 엄마라는 존재의 권리에 속하는 부분이라 생각하므로 그를 인정해준다.
그래도 한 번 고래를 사줘보긴 했는데, 다행히 조카는 무척이나 흥미로워 하며 꼼짝않고 책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이모를 흐믓하게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조카도 세상이 그리 아름답고 만만하지만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고, 알아야 할 것이고, 그땐 고래가 괜찮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