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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후.

kalos250 2006. 6. 19. 09:03
어젯밤 친구와의 통화

나: 우울해서 미치겠어
친구S: 왜, 우리가 축구 질까봐?

온통 축구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이 친구의 꼬드김으로, 결국 야심한 밤에 전철을 타고나가 심야영화를 보고 광화문, 시청으로 응원을 나가게 됐습니다.
햇반을 살 때 사은품으로 끼워준 두건과 감기재발을 우려해 준비한 긴팔옷을 들고.
나의 우울함에 대해 축구응원전을 처방해준 친구는 문화연구를 하는. 그 현장에 있는 것이 직업상 필요한 사람이었던 거지요.

동대문에서 엑스맨을 보고 새로워진 청계천을 처음으로 걸었습니다.
별로 내키지가 않아 여태 가보지 않았었는데, 매스컴에서 보여준 요란함과는 달리 뭐 그닥 대단치 않아보였고, 이미 많이 방치된 모습이더군요. "청계천 복원"이란 이름으로 덕을 많이 본 이가 이미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친구S: 이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이게 "청계천 복원"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야.
       한강물을 끌여올려서 인공적으로 흐르게 한 게 어떻게 하천이 될 수가 있어,
       이건... 따라해봐, "인공역류수로"(착한 학생마냥 따라하는 나)
       그걸 "청계천 복원"이라는 미명으로 전국민을 호도했으니 얼마나 나쁜 일이야.
       이런 걸 만들어 놓고 이끼 낀다고 이끼 제거 작업을 또 하고.
       하천에 이끼가 끼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얼마나 한심한 일이야

광화문, 시청에 모인 빨간옷은 정말 많았습니다.
여기 저기 끌려다니느라 축구장면은 많이 놓쳤지만 골목까지 가득 차 있던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을 보는 일도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친구의 설명대로 붉은 악마가 주도하는 광화문 표정과 SK가 주도하는 시청의 모습은 조금 다르더군요.
2002년 자발적인 응원문화를 만들어냈던 힘과 기업에서 마련한 잔치에 수동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의 차이, 라고 친구는 설명하더군요.  

뭐 경기진행에 따라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이야 그닥 다르진 않았지만요.
그래도 토고전에 대한 반성이 있었는지 특별히 불미스럽거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선수들, 잘하더군요.
박지성이 젤 좋다고 한 6살 조카가 골소식을 들으면 정말 좋아할 듯 합니다.
응원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나이에! 먼곳까지 원정을 다녀오느라 수고한 저도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