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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 "뼈아픈 직립", 등하교길, 깨달음 하나

kalos250 2006. 6. 25. 14:04
윤성학 - 뼈아픈 직립


허리뼈 하나가 하중을 비켜섰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다가
후두둑
직립이 무너져내렸다

뼈를 맞췄다
삶의 벽돌이야 한장쯤 어긋나더라도
금세 다시 끼워넣을 수 있는 것이구나
유충처럼 꿈틀대며 갔던 길을
바로 서서 걸어 돌아왔다

온몸이 다 잠들지 못하고 밤을 새워 아프다
생뼈를 억지로 끼워넣었으니
한조각 뼈를 위하여
이백여섯
삶의 뼈마디마디가
기어코 몸살을 앓아야 했다



* 늘 내 건강을 염려해주는 고마운 친구의 강권으로
요르단 국왕 주치의, 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신 Verves Specilist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일종의 마사지 요법인데, 나이 지긋하신 이 분의 섬세한 손끝에서, 나의 부실해진 몸 마디마디 가 서서히 치유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먼 길을 매일 오간다.
덕분에 한동안 가까이 하지 않던 책을 잡게도 되었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여러 해 전 이모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선배는 우연히 내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간단히 던지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등하교길이 먼 아이가 사고가 깊어지는 법이지"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간단한 내 대답 뒤에 이어진 선배의 이 한 문장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따뜻해졌고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선배는 어떤 의미를 담았던 건지도 정확히는 모르겠고 지금은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내 삶의 조건이 정말 밉살스럽고 억울하게 느껴질 때(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잔잔한 응원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먼 길을 꾸준히 다니다보면 보름쯤 후에 나는 몸도 건강해지고 사고도 깊어져야한다.
이 할아버지와 이모 선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ㅎㅎ

**  내가 알고 있던 내 몸의 헛점 외에 "좌골신경통" 이라는 병명을 하나 더 들었다.
그대로 방치하면 걷는 것이 고통스러워질 거라 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등하교길도 길었고, 이후로도 참 많이 걸어다닌 듯.

*** 이 Nerves Specilist의 말을 듣다가 문득 께달은 것 하나.
그 동안 내가 왜 자꾸 아픈 걸까, 엄살이 아닌가, 정신력이나 인내력이 부족한 걸까, 무어 잘못 살아왔기에 이 모양인 걸까, 라는 고민에 마음이 어두웠는데, "몸이 약해서" 라는 이 분의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다.
"몸이 약해서" 란 한 마디를 긍정하지 못하고 굳이 부인하면서 쌓아왔던 번민들이 후두둑 떨어져가는 느낌.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고 나면 생이 훨씬 수월해진다 했던가.
생의 지혜를 한 조각 얻어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