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nge

추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kalos250 2006. 6. 23. 23:11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래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시작되는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정말 정말, 정말 재밌다.(소설을 잡고 있는 동안 우울도 뭐도 달아날 만큼)

사실 서울 변두리에 살았던 내 어린시절엔, 어린이 야구단 같은 건 아주 아주 부잣집 애들에게나 접할 수 있는 문화였다. 걸스카웃이나 보이스카웃처럼.
그래서 이 책을 강권한 친구에게 여러 번 물었다. 이게 다 진짜야? 하고.
놀랍게도 이 신화 혹은 동화 같은 얘기가 전부 실화란다.
우리 프로야구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보다 끔찍이도 재밌게 읽히는 문체.
오랫동안 이렇게 발랄하고 재기 넘치고 기분 좋게 읽히는 소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가 감탄한 대로, 딱 우리 세대의 기억과 감성을 유년부터 그리도 치밀하고 유쾌하게 복원해놓는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히다.  
이런 것들만으로도 맞아 맞아 하며 마구 감탄해가다 소설 말미에 오면, 소설가 황석영의 표현대로 "경쾌하게 열리는 전망" 이 있다.
('가벼운 것들로는 날개를 만들 수 있다'는, 아주 오래전 주철환 피디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1982년 프로야구의 창단으로 비롯된 우리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섬세한 시대적 통찰도 있고, 그로 인해 각박해진 삶의 양식에 대한 반성이 있고, 서두에 밝혔던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연민과 응원과,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은 주인공에게 친구는 말한다.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이 소설을 손에 쥐고 있었던 건, 대학 때 단짝 친구였던 J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복분자술을 앞에 놓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내게 스포트라이트가 환하게 비춰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 같아. 바둥바둥. 도대체 왜 그리 사냐는 말 들으면서.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무대는 이미 내려져 버린 거야...."

글쎄, 인생을 살아가는데 늘 현명했던 친구의 무대가 이미 사라졌거나, 친구가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했거나 한 것 같지는 않지만(아직은, 그것도 꽤 후륭하게 잘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삼미슈터스타즈의 이 엄청난 비밀.. 혹은 철학에 대해선 알려줘야지 라고 맘먹는다.

바로 이것.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 너무 재밌는 소설이어서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있는 관계로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함.